네버마인드/251번 환자 - 환자의 트라우마로 보는 라캉의 사상

오늘 소개해 드릴 작품은 2015년 발매된 Flying Mollusk 사의 PC게임 <네버마인드>입니다.

구매자들이 지불한 금액으로 추가적인 콘텐츠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의 퍼즐/호러 인디 게임으로, 스팀을 사용하고 계시다면 언제든지 게임을 구매하여 플레이해 보실 수 있습니다.

공식으로 한글자막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주된 내용은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환자의 정신세계를 탐험하여,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업체 뉴로스탤지아 (Neurostalgia Institude) 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정신과 의사이자 뉴로스탤지아 사의 신임 정신탐험 요원이 되어 환자들의 정신세계를 탐험하는 줄거리의 게임이 되시겠습니다.

2019년 기준 현재 튜토리얼을 제외한 4명의 환자가 업데이트되어있으며, 각자 다른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있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정신세계 속에 부여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리뷰할 대상은 튜토리얼을 마치고 플레이어들이 만날 수 있는 첫 환자인 251번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게임을 시작하기 전 환자의 대한 간략한 정보와, 당사자의 짤막한 인터뷰가 출력된 후 게임이 시작됩니다.

251번 환자

이 환자는 시선 공포증이 있으며, 어머니의 사망 후 증상이 더 심해진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트라우마와 관련된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검사 이전 환자의 진술

음...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무거나 상관없나요?

그래요... 음... 그러니까...

전 20년 동안 부동산 일을 했어요.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대학을 졸업했고요.

결혼은 한 적 없어요. 외동딸이고요.

늘 고양이를 좋아했어요. 하하...

교회는 질색이에요. 윽!

늘 혼자 지내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절 보는 시선이 정말 싫거든요. 특히 요즘에는 더 그래요.

솔직히... 뭐랄까, 몇 년 전까지는 저도 평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 그때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자기를 그냥 쳐다보는 기분 같은 거 느껴본 적 있어요? 방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전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거에요. 나한텐 말해주지 않고요.

모르겠어요. 그냥...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면 기분이 안 좋아져요. 죄책감 같은 게 들고 막 화가 나요.

어릴 적에는 꽤 행복했던 것 같네요.

아빠는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요. 엄마 말로는 자동차 사고였대요. 전 기억은 안 나지만요. 제가 너무 어렸을 때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전 아빠랑 늘 직소 퍼즐을 맞추고 놀았어요.

아빠는 사업하시는 분이었고요. 늘 우리 집 돈 문제 얘기를 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엄마랑은 사실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긴 하네요.

*웃음* 아... 엄마는 와인을 좋아했어요. *웃음*

아... 정말... 왜 이렇게 돼버린 건지 모르겠네요. 어릴 땐 아무 문제 없었는데...

인터뷰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의 목표는 환자의 정신세계를 탐험하며 찾아낼 수 있는 그림 형태로 된 총 열 가지의 단서를 확보한 후, 그 중에서 진실된 단서 5개를 찾아내 순서에 맞게 배열하는 것입니다.

심각한 환자의 정신상태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는 집들

찻잔과 곰인형

청구서로 보이는 우체통의 편지

게임 내에서는 플레이어의 심박을 감지하는 장비를 추가구매하여 플레이 하기 전 PC에 장착할 겅우 심박수가 올라갈 때마다 배경의 분위기가 더 무섭거나 기괴하게 변하는 바이오피드백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보려면 불을 꺼야 한다는 뜻의 메시지와 옆에 놓인 전등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계속 볼 수 있는 찻잔

우유/총/슬픔 을 의미하는 그림

(소, 총기 허가증, 그리고 초상화에서 지워진 부친의 얼굴)

이후 이 암호를 그대로 금고에 입력하면 또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주방에 들어서자 갑자기 우유가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냉장고

냉장고를 열자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나고 아버지란 태그가 붙은 시체 가방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죽은 모양입니다.

수많은 시체 가방은 덤

이번엔 차고로 들어섭니다. 차고 뒤쪽에 또 길이 나 있고 차가 지나다니고 있습니다.

차도를 무사히 건너자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순간이동.

시끄러운 차량의 클랙슨 소리와 함께 "기억해 내(Figure it out)" 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길을 찾자 보이는 기괴한 얼굴이 가득한 풍경과, 부친으로 보이는 권총자살한 남자의 시신이 그려진 그림.

심지어 이 얼굴들은 플레이어가 아무리 움직여도 동공의 시선을 플레이어에게 고정하고 있습니다.

단서를 찾아 탈출하자 이번에는 교회의 예배당이 보입니다.

그리고 예배당에 앉은 마네킹들의 시선 역시 플레이어를 향해 고정되어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 원반에 찻잔을 집어다 붙이면

찻잔에 물이 담기며 원반이 회전을 하고, 원반 중앙의 눈이 떠집니다.

그리고 부친의 시신이 담긴 관짝이 열리며 마지막 단서를 획득하죠.

그렇게 열 가지의 단서를 모두 모으면, 이제 마지막 단계인, 단서의 배열만이 남게 됩니다.

반은 진실, 그리고 반은 거짓.

게임 내의 단서 (5개는 진실, 5개는 거짓)

-난 차를 마시고 있었지. 그 날은 정말 더웠다! 엄청 목이 말랐던 기억이 난다! TRUE

-아빠와 아빠의 편지다. 우체부 아저씨가 새 편지를 가져 올 때면 아빠는 나랑 놀아주지 않으셨다. FALSE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는 갈아 만든 포도 주스였다. 냄새는 정말 최악이었다. FALSE

-어머니와 아버지는 거의 집에 있는 날이 없었다. 꽤 외로웠던 것 같다. FALSE

-엄마는 아빠가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는 몹시 슬퍼하셨다. 엄마는 내가 그 질문 하는 걸 싫어했다. FALSE

-내가 우유를 부으려 하고 있다. 내가 난장판을 만들어 놨다. TRUE

-아빠가 차를 몰고 출근할 때, 엄마는 늘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FALSE

-내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아빠는 주로 위층에서 일을 하셨다. 많이 화가 나신 게 아니라면 어쩌면 아빠가 나랑 퍼즐 놀이를 해주실지도 몰라. TRUE

-아빠가 뭘 드시는 거지? TRUE

-...(자살한 부친의 시신) TRUE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어린 시절의 환자는 당시 바깥 마당에서 티타임 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목이 말라 집으로 들어가 우유를 마시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수로 우유를 바닥에 쏟아버렸고, 어쩔 줄 몰랐던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샤워 중이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부탁하라며 그녀를 위층으로 올려보냈습니다.

그녀가 위층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던 순간, 그녀의 아버지는 총을 입에 물고 있었고 그녀를 바라본 채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보게 된 기억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어머니는 교통사고 이야기를 꾸며내어 사건의 모든 전말을 잊게 만들었지만, 환자의 무의식 속에서는 교통사고는 거짓이며 모든 전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순간 방어기제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녀의 시선공포증은 심해져갔으며, 그로 인해 플레이어를 찾은 것이었죠.

이 이야기를 라캉의 이론을 통해 해석해 보겠습니다.

1. 교회=자살을 금지하는 곳이므로, 교회를 사랑하게 된다면 반대로 아버지를 증오할 수밖에 없어서, 아버지를 증오하는 길을 피하고자 무의식적으로 교회를 질색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 사람들이 보는 시선은 곧 내가 나 자신을 보는 시선이요, 어릴 적 환자는 아버지의 자살(그리고 아버지의 시선)과 직면하게 되면서, 본환상이 형성되었는데 이때의 본환상이란 '아버지가 죽은 것은 나 때문이다.'라는 죄책감으로 추측이 가능합니다.

죄책감은 지속적으로 '시선'이라는 단어에 달라붙고, 시선을 연상시키는 '사람들의 시선'을 환자가 피하고 혐오하게끔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웃음* 아... 엄마는 와인을 좋아했어요. *웃음*" 이 부분 또한 라캉의 '인간은 기표의 우연성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데, 와인은 포도로 만들며, 포도주스는 와인과 아버지의 자살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 중의 하나로도 볼 수 있습니다.

4. 환자는 그 당시의 기억을 잊은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설명에 의해 강제로 그 기억을 다른 식으로 '해석당하게' 조작된 것이며, 이는 어머니의 시선과도 상응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분노는, 당시의 진실에 대해 함구하도록 명령한 어머니의 시선에 대한 무의식적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망 감정은 어머니가 죽었으면, 그리고 어머니가 사라짐으로써 당시의 진실을 자유롭게 해석하여, 궁극적으로는 당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기억은 하지만, 그 기억의 무의식적 힘(실재계)로부터 벗어나고자 상징화하고자 하는) 환자의 근원적인 소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증상이 심해짐으로써 플레이어를 찾아온 것 또한 무의식적인 환자의 욕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디 라캉의 철학은 프랑스 철학답게 오리지날한 전문용어가 많고 이를 본 글에서 일일이 다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이론에 대한 설명은 배제하고 이렇게 비전공자들도 무리 없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서술하는 것으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라캉은 욕망의 근원이 개인의 결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주장했고, 그 결여로 인해 착각과 환상을 그리게 되고 그것을 염원, 소망, 혹은 몽상하는 것이 삶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을 향유라 하는데 이 향유라는 것은 착각이고 환상이기 때문에 완벽한 충족도 결여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 어중간함을 극복하는 것이 라캉철학의 주된 목표요, 이를 위한 끊임없는 상황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죠.

<네버마인드> 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현대프랑스철학을 전공했지만 주전공도 아닌데다 전공수업에서도 맛뵈기로만 가르쳤던 라캉에 대한 이야기와 연관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 글은 몇 번이고 쓰기를 망설일 정도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코로나가 진정이 되면 추후 다시 겨스님을 찾아뵌 후 관련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또한 다른 에피소드에 대한 리뷰에 대해서도 꽤나 망설여지는 편입니다.

각기 다른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를 모두 같은 이론으로 명료하게 분석하는 것도 난제요, 게임 내에서의 구현된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꽤나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추후에 또 리뷰할 수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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