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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9 네버마인드/440번 환자 - 일류 피아니스트의 트라우마를 통해 보는 강박증세에 관한 고찰
- 2022.10.15 네버마인드/418번 환자 - 참전군인의 PTSD를 통해 보는 전쟁론의 재해석 1
- 2022.10.15 네버마인드/251번 환자 - 환자의 트라우마로 보는 라캉의 사상 1
글
네버마인드/440번 환자 - 일류 피아니스트의 트라우마를 통해 보는 강박증세에 관한 고찰
2022.10.18
이번편 역시 지난번에 이어서 <네버마인드>의 다음 스테이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다루게 될 환자는 튜토리얼을 포함한 전편의 세 스테이지를 모두 클리어할 경우 조우할 수 있는 440번 환자의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게임에 대한 소개와 정보는 전편 글을 참조하시길 바라며, 바로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하죠.
전편보기
251번 환자

의뢰인은 유명인사로서 최근 직업과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과도하며 해로운 죄책감을 보입니다. 의뢰인을 Neurostalgia Institute에 소개한 친구나 동료들은 의뢰인이 의뢰인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심오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현했습니다.
이번 인게임 배경에서 피아노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이는 걸로 봐선, 이번 의뢰인은 음악과 관련된 유명인사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피아노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검사 이전 환자의 진술
걱정은 고마워요. 애써주신 것도요. 그런데 과장이 좀 심하네요.
우리 솔직해지죠. 난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요. 실수하는 게 당연해요.
공연 때 있었던 일은...어딘지 몰랐어요, 끔찍했어요!
네, 창피해요. 수치스럽기까지 해요!
하지만... 이젠 그게 내 현실이겠죠.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날들은 이제 지나갔죠 - 거기에 있었던 일은 그저... 새로운 일상이죠.
그런 실수를 잊는 건...
어릴 때부터 내 좌우명은 항상 이거였죠.
"고통이 날 훌륭하게 만들고, 완벽함은 고통을 가치 있게 만든다."
그래요, 죄책감이 들어요. 누군들 안 들겠어요? 특히 "나"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죠.
그런데 그게 지나치다고요?
변덕스럽다고요?
강박적이라고요?!
이봐요, 내 친구들과 동료들 - 다들 "나쁜 뜻" 아니란 거 알아요, 다만... 이해를 못 할 뿐이에요.
이해한 적이 없죠.
난 "평생" 완벽을 추구했어요. 일단 진정한 완벽을 맛본 사람은 - 결코 잊지 못하죠.
그 공연...
난 관객을 실망시켰어요.
오케스트라도 실망시켰어요.
나한테도 실망했죠.
난 끔찍한 실수를 저질러 날 믿는 모두를 실망시켰어요.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그런데도 당신이나 나나, 당신네 그 빌어먹을 잘난 기술이나 시술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요!
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늘 그래 왔으니까요.
게다가 솔직히 말해, 이게 트라우마와 관련 있다니 과장이 아주 심하네요.
저 때문에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인제 와서 그런 게 다 왜 중요하죠?
아무래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일생 동안 내내 이런 강박증세에 시달려왔으며, 알츠하이머로 인해 이게 더 악화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피아노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방이 보입니다.
그리고 의뢰인의 단서를 모을 수 있는 판과 물망초가 핀 뇌 형태의 모형을 볼 수 있죠.

물망초의 꽃말은 "진실된 사랑." 그리고 "나를 잊지 마세요."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의뢰인이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와 무언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에서 나가 주변 사물들을 살펴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임을 보여주는 포스터들이 보입니다.
의뢰인은 일류 음악인이었던 모양입니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오케스트라 무대가 보이는군요

의뢰인의 기억을 조사하기 위해 피아노에 앉아 보겠습니다.
지문이 찍힌 건반에서 연주를 할 수가 있군요. 하지만 악보가 없어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연주를 해보자, 메트로놈이 가득한 필드로 이동해버렸습니다.
의뢰인이 일류 피아니스트였던 만큼 음악과 박자에 의한 강박관념이 의뢰인의 마음을 제대로 잠식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메트로놈의 추가 좌우로 움직이며 지면을 강타하는데, 이 범위 안에 플레이어가 서 있으면 데미지를 받고 필드의 시작지점으로 돌아와 버립니다.


당황하지 말고 메트로놈을 요리조리 피해 필드 내의 단서를 찾아 봅시다.

단서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자, 청록색의 메트로놈이 보입니다.

안에 통로가 있군요.

다시 게임을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오자 뇌 위에 핀 물망초가 시들었습니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걸까요?

다시 방 안의 통로를 따라가보자, 방 불빛이 어지럽게 깜빡이면서 부정적인 문구들이 적힌 액자가 보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거나, 더 슬프게 울어라."

"너의 실수는 모두의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모두가 실패를 싫어해."


통로를 빠져나오자 설명서와 함께 악기 형태의 퍼즐을 볼 수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설명서와 함께 악기의 연주법을 구사하여 푸는 퍼즐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강박적인 가르침과 함께 의뢰인의 감정변화를 보여주는 듯한 드럼 형태의 퍼즐 설명서
희생이라고 쓰여진 부분은, 손가락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손을 다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강박적인 연습을 강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서는 강박관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퍼즐을 풀자...



마지막 퍼즐을 풀고 나가자 이번에는 의뢰인을 비난하는 포스터나 신문기사들이 보입니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공연장에서 실수까지 하게 된 모양입니다.



다시 오케스트라 무대로 돌아오자 이전의 퍼즐과 유사한 피아노 형태의 퍼즐이 보이는군요.
그런데, 건반을 하나하나 누르자 설명서가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합니다.
필연적으로 실수를 할 수밖에 없겠군요.
피아노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다시 어디론가 이동하게 됩니다.



통로를 따라 들어선 곳은 의뢰인의 집으로 추정되는 공간과, 퍼즐에서 본 그 피아노였습니다.

다시 피아노를 조사하기 위해 피아노 뚜껑을 열자...


방이 피로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강박적인 연습으로 인해 생긴 손의 상처는 피가 날 정도로 심각했던 걸로 보입니다.

방이 피로 차오르면서 이동한 공간은 손가락 끝에서 피를 흘리는 청록색 손과 피아노 건반으로 이루어진 공간.

주변을 둘러볼때마다 피아노 건반으로 된 바리케이드가 길을 막고 있으며, 손가락이 부러져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떨어지는 손가락을 요리조리 잘 피해가면서 필드 주변의 단서를 수색해 보겠습니다.

단서를 모으자 막힌 길이 뚫리며 점차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손에서 쏟아지는 피는 어느새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단서를 찾아내자,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친 손과, 피아노 건반, 그리고 필드 내에서 끊임없이 흩날리는 물망초 꽃잎,
강박증으로 인해 손까지 희생을 했지만, 알츠하이머로 인해 더 악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출구를 발견했으니 다른 곳에서 더 조사해보겠습니다.

다시 시작지점으로 돌아오자, 중앙에 있던 뇌 모형에 있는 물망초가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그 색이 없어졌군요.
의뢰인의 트라우마가 플레이어의 치료로 인해 완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알츠하이머로 인해 잊혀지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다시 통로를 따라가자, 알츠하이머가 의뢰인에게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듯한 포스터도 보이는군요.

다시 도착한 무대,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으스스하군요.

또 피아노 퍼즐을 풀어야 하는 것 같은데...

다행히 이번에는 피가 맺힌 악보와 지문이 어느 건반을 쳐야 할 지 알려줍니다.

지문을 따라 피아노 건반을 누르자 무사히 오케스트라가 종료됩니다.
방금 전까지 으스스했던 분위기가 점프스케어 대신 이런 연출을 위한 거였다니 정말 다행스런 일입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으니 무대에서 퇴장.



구태여 음악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인은 그 성과에 관계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죠...
"예술은 가볍고 즐거워야 한다"와 "예술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늘 화제가 되어 대립하는 예술이 추구해야 할 두 가지의 길이 있지만, 어느 길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단서까지 모두 찾아낸 후 시작지점으로 되돌아왔으니, 이제 이 단서들을 언제나처럼 배열해 봅시다.
이번도 다섯 개는 진실, 나머지 다섯 개는 거짓.
-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기억을 잃은 걸 상기했죠. (FALSE)
- 부모님께서는 유명한 피아노 강사를 고용하셨어요, 최고가 아니면 안 되니까요. (TRUE)
- 그는 제게 늘 실패를 두려워하라고 가르쳤어요. (TRUE)
- 모두가 완벽하진 않다는 걸 깜빡했어요. (TRUE)
- 다른 아이들처럼 저 역시 모든 것에 딱히 "재능" 이 있지는 않았어요. (FALSE)
- 한 번은 고통스러운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제 손이 대가를 치렀죠. (TRUE)
-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한 결과, 저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됐어요. (TRUE)
- 부모님께선 관심도 없어 보였어요. (FALSE)
- 다른 아이들이 제 손을 보며 놀렸어요 (FALSE)
- 그는 저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어요. (TRUE)

다시 밝혀지는 진실
예상했던 대로 의뢰인은 일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피아노를 배워 왔고 부모님의 소개로 유명한 피아노 강사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피아노 강사는 지나친 완벽주의자였으며, 의뢰인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컸다는 점이 문제였죠.
그리고 의뢰인이 어릴 적 피아노 연습을 하던 도중 실수를 하자, 강사는 의뢰인을 계속 닦달하다 결국에는 그대로 피아노 건반 뚜껑을 내리쳐 닫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의뢰인은 실패에 대한 공포로 인해 피아노에 대한 트라우마가 발생했고, 훗날 "황금의 손"이라고 불릴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일류 피아니스트가 되었지만, 이게 모두 그 트라우마로 인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였으며, 그녀의 정신을 좀먹기 시작했던 거였죠.
그리고 이게 극에 달하자, 결국에는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실수를 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던 겁니다.
게다가 의뢰인이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는 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었으며, 의뢰인의 어릴 적 트라우마는 되려 알츠하이머로 인해 점차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죠.
뉴로스탤지어와 플레이어의 활약으로, 트라우마의 진정한 원인을 찾아낸 의뢰인은 알츠하이머도 때때로는 좋은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플레이어의 정신 탐험을 통해 자신의 잊혀진 기억을 찾아내 주어서 감사하다며,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게임 속의 이야기가 끝났으니 다시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정도면 됐어 VS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어
이 두 가지의 선택지 중 어느 쪽 성향이 더 강하신가요?
후자의 성향이 더 강한 사람들은 과거의 성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고, 크고 작은 성취에 기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더 몰아붙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죠.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최고를 추구하게 되고, 조그만 성취에도 무감각해지며, 만족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최고가 되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든 남을 이기려는 욕구 역시 발생하죠.

이런 생각과 태도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팀원들의 작은 성취를 무시하고 계속 팀원을 갈구는 팀장으로 이루어진 팀이
과연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비슷한 소재의 영화인 <위플래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뉴욕의 셰이퍼 음대에 입학한 주인공 앤드류는
최고의 지휘자이지만 동시에 최악의 폭군인 플레처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플레처는 누구든 성공으로 인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폭언과 폭력을 마다않으며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교육방식을 고수하고 있었죠.
오죽하면 어록 중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가치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야"
라는 말이 영화 내 명대사로 꼽힐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앤드류는 이런 플레처의 커리큘럼에 휘말려,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한 반 미치광이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애에 쓸 시간이 없다며 연인과 결별하고, 교통사고가 나도 병원에 가지 않고 연습을 하겠다며 달려오는 등의
교수의 눈 밖에 나기 전까지 계속 그에게 인정받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죠.
영화의 타이틀은 <위플래시>는 영화 내에서 주인공 앤드류가 직접 연주하는 곡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직역할 경우 앤드류와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플레처의 "채찍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 역시 440번 환자의 피아노 강사처럼 마치 혹독한 훈육을 정당화하듯이 충분히 고통을 느끼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 일류가 되기 위한 역경과 고난은 충분히 이겨내야 할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굳이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이런 플레처의 커리큘럼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학생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플레처가 교수직을 그만두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런 의문을 남기게 됩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할 가치가 있을까?
또한 그런 삶은 정말로 행복할까?

인간은 절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존재로서 인간은, 인간다움이라는 또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습니다.
늘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인해 피로를 느끼고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완벽을 요구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완벽이 자신을 늘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근본적인 이유 역시 무엇인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성장과 성공을 위해선, 때때로는 자기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이 우리를 몰아붙이는 것보다 더 강하게 세상을 몰아붙여야 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과유불급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끝까지 갈 준비 역시 되어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성취에도 기쁨을 누림으로서,
그 만족감을 통해 내면에 잠들어 있는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과정 역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는 일상이 되기를 기원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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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네버마인드/418번 환자 - 참전군인의 PTSD를 통해 보는 전쟁론의 재해석

2022.06.23
전편에서 다룬 네버마인드를 이어서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다루게 될 환자는 첫 스테이지에서 조우한 251번 환자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경우 조우할 수 있는 418번 환자의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게임에 대한 소개와 정보는 전편 글을 참조하시길 바라며, 바로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하죠.
전편보기
카페

418번 환자
일련의 사건 후 연구소에 수용된 노숙자입니다.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며, 공격성을 보입니다.
트라우마와의 연관성이 의심되는 환자입니다. 정신 조사 전의 기존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검사 이전 환자의 진술
언젠가 나와 함께 지옥에 갈 겁니다!
난 괴물이에요.
아니... 아니야. 괴물은 그 사람들이에요.
다들 날 재수없게 여겨요. 하지만 정말 재수 없는 건 그 인간들이죠. 그 사람들이 늘어놓는, 전화가 끊어졌다거나 천의 실이 몇가닥인지 센다든가 하는 것들요.
세고... 세고... 세고...
실수를 세고... 실수를 세고... 실수에는 피가 묻어 있어요.
내 실수... 내 피가 아니야... 내 피가 아니야... 왜 내 피가 아니죠?
난 세상을 구하지 않았어요. 도대체 무슨 망할 놈의 세상을 구해야 하는 거죠?

이번 스테이지의 시작은 극히 평범한 거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하지만 부유한 도시의 모습이라기보단 마치 슬럼가를 연상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페이즈에서는 점프스케어나 공포심을 부각시킬 만한 요소가 딱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쓰레기통 속에서 깡통을 발견해 주울 수 있는 상호작용 요소만이 존재합니다.

캔 재활용 부스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한 기기는 아니지만, 미국 등의 번화한 해외 거리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기기로, 캔 재활용을 위해 깡통을 따로 모을 수 있는 일종의 분리수거함이며, 캔을 넣을 때마다 동전 하나를 줌으로서, 재활용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동전 획득

동전을 분수대에 던질 수 있습니다.
미래를 불 속에 던져라, 그리고 새롭게 돌아오라
이는 MMA 선수 마이클 챈들러의 명언을 인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최악의 경우 패배의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을 불 속에 던져라.
승리의 전율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Throw yourself into the fire so at worst you can feel the agony of defeat,
but at best you will feel the thrill of victory while daring greatly.

동전을 분수대에 던지자 거리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전쟁의 참상을 묘사한 듯한 이미지들이 주마등처럼 출력됩니다.
이번 의뢰인의 트라우마는 전쟁터와 연관된 것이며, 거리에 떨어진 것은 아무래도 포탄이었던 것 같군요.

그리고 환자의 트라우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듯, 초토화된 거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건물과 거리 곳곳에 보이는 기괴한 마네킹과 그 팔은 덤

불에 그슬린 마네킹들이 보입니다. 마네킹에 접근하면 플레이어에게 데미지를 주면서 잡음과 함께 플레이어(혹은 의뢰인으로 찾아온 환자)를 비난하는 듯한 말투가 쏟아집니다.
그리고 필드에서 하나둘씩 사건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거리의 네온간판에서 출력되는 비난의 메시지

표지판의 빈 공간을 화살표 모양으로 만들면 열리는 문 형태의 퍼즐

문을 열자 귀신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귀신들은 딱히 플레이어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으나 게임이 끝날 때까지 내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계속 필드에서 보이는 불에 그슬린 마네킹들


죽어라, 꿈꾸어라, 반복하라.
영어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명언 중 하나인 Dream, Believe, Do, Repeat를 비틀어 놓은 듯한 문구로 추정됩니다.


3, 6, 5라는 비밀번호를 의미하는 오브젝트
3마리의 쥐 시체, 6개의 술병, 그리고 5개의 주사기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이번엔 약상자를 든 마네킹들이 보입니다.

약에 접근하자 마치 마약을 복용한 듯한 카메라 흔들림 연출을 보여줍니다.



마약으로 인해 배경의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플레이어(혹은 의뢰인)을 비난하는 간판 속의 메시지.
그리고 필드에서 보이는 더 많은 단서들.

다른 단서를 찾아 필드 안의 건물로 진입하자, 마약의 후유증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뒤틀린 복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문을 열려고 하지만 참호를 만들 때 쓰는 사대 더미에 가로막혀 더 이상 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을 보여주더니,

끝없는 계단과 함께 등장하는 수많은 귀신들.
귀신들은 여전히 플레이어에게 별다른 해코지를 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사대가 문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건물에서 탈출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다다르지만, 웬 퍼즐 하나가 가로막고 있군요.
버튼을 누르면, 누른 버튼의 상하좌우에 위치한 다른 버튼의 불이 켜지거나 꺼지는 방식의 퍼즐로, 모든 버튼의 불을 켜거나 꺼야 합니다.

모두 켜서 완료.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또 다른 단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며 방금 전의 계단과 귀신들의 모습이 다시 나타납니다.

떨어지자 도착한 곳은 바로 방금 전의 마약 상자를 들고 있던 마네킹들이 있던 곳.
이곳에서 나가 다른 단서를 찾아봅시다.

다시 평범한 시내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거리에는 여전히 불에 그슬린 마네킹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시 쓰레기통을 뒤져 보니 이번에는 구급 상자가 보이는군요.
상자 안에는 대검이 들어 있었습니다.

대검을 들고 바닥에 누워 있는 상처투성이 마네킹의 손을 찌르자, 마네킹이 입에서 웬 토큰을 토해냅니다.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는 보이지 않던 놀이동산의 입구


토큰을 입장료로 지불해 놀이동산에 들어갑니다. 여전히 입구 복도는 마약의 영향을 받기라도 한듯, 뒤틀려 있군요.

필드에서 계속 볼 수 있는 마네킹이 배치된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범한 놀이동산의 모습



그리고 놀이동산에 있는 오늘의 운세를 연상케 하는 게임기에서 출력되는 메시지.
여전히 플레이어에게 맹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롤러코스터에 접근하자, 탑승자들의 비명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화면에 핏자국이 맺힙니다.
마치 전장의 아수라장과 민간인들의 아비규환을 묘사하듯이 말이죠.

놀이동산 역시 기괴한 모습과 귀신이 가득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다급한 무전 소리와 총성이 계속해서 플레이어의 귓가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전쟁터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롤러코스터에 탄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인해 재발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전쟁터에서 표적을 놓치면, 순식간에 자기 자신이 표적이 되어버리는 것이 바로 군인의 숙명.



그리고 전쟁터에서 생기는 트라우마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메시지를 모두 출력한 점쟁이 게임기가 폭발하면서, 다시 한번 놀이동산의 모습이 바뀝니다.

전쟁터에서의 실패의 대가는 곧 죽음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시뻘건 해골의 컷신이 출력됩니다.

마지막으로 전쟁터의 참상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피범벅된 놀이동산이 보이는군요.
회전목마에도 목마 대신 마네킹이 봉에 꿰뚫린 채로 매달려 있습니다.

겁먹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면 마지막 단서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군인들이 자기 자신과 아군이 곧 선이요, 적들은 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전쟁터에 뛰어들지만
사실 전쟁터에서 조우하는 적들도 결국에는 평범한 인간이고, 병사임을 깨달을 때 이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이것이 전쟁터에 대한 트라우마를 만드는 원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참전군인들의 인터뷰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죠.

모든 단서를 모으자 플레이어를 구출하러 오는 듯한 헬기 소리와 함께, 스테이지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필드가 사대 방벽으로 봉인되어 더 이상 필드를 둘러볼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전편과 마찬가지로 모아 놓은 열 개의 단서 중 다섯 개의 진실을 찾아서 올바른 순서대로 배열해 봅시다.
역시 다섯 개는 진실, 나머지 다섯 개는 거짓.
- 부모님은 한 번도 날 이해해준 적이 없습니다. (FALSE)
- 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파괴해야할지, 그걸 잊어버렸다. 좋았던 기억도, 안전하다고 느낀 기억도 없다. (TRUE)
- 난 어딘가 이상했다.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FALSE)
- 하지만 뭔가를 구하려면 다른 뭔가를 부숴야 할 때도 있다. (TRUE)
- 난 늘 자기혐오와 불신에 시달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그것들에 목소리를, 힘을 주었다. (TRUE)
- 난 가끔 재미로 벌레를 해부했다. (FALSE)
- 그것들은 그저 한 번으로 그치는 노래를 부른 게 아니다. 수백 개의 속삭임이 만드는 흥얼거림, 그런 거였다.
난 늘 그 것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들은 내가 절대 집에 갈 수 없다고 했다. (TRUE)
- 그것들은 증오로 가득한, 성난 사람들이었다. (FALSE)
- 난 십 대 때부터 그것들을 썼다. (FALSE)
- 나는 용사였다. 세상을 구하고 싶었다. (TRUE)

그리고 또다시 밝혀지는 진실.
참전군인이었던 의뢰인은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여가면서 점차 인간성이 무너져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혼령이 보이는 환각과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이 계속되었고 이를 잊고자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어느날 어떤 놀이동산에 입장했다가 롤러코스터에서 울려퍼지는 비명소리에 전장에서 울려퍼지던 비명소리를 연상해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체포되어 연구소에 수용된 거였죠.
그리고 의뢰인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치료하고자, 뉴로스탤지아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번 스테이지에서 다루어진 소재는 PTSD의 일종인 전투전 증후군입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장병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 상황과 똑같이 느끼고 행동하는 정신질환의 일종이죠.
오늘날의 전쟁터에서는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연속적으로 전투를 강요받는 경우가 다반사가 됩니다.
죽거나 다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물론이요, 총성과 폭발로 만들어지는 굉음, 그리고 전우의 사망 등 불안과 공포, 그리고 좌절을 느낄 수 있는 요소는 차고 넘칩니다.
그리고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과 함께 발생하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전투는 병사의 심신 모두를 피폐해지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죠.
이를 군사학적 용어로 전투전 증후군이라고 하며, 정신적으로 건망증이나 집중력 저하, 심지어는 기행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것이 주된 특징입니다.
심리적으로는 불안감, 불면증, 악몽, 죄책감, 신경질 등을 유발하기도 하며, 이것이 몸의 병으로 이어지는 경우 역시 다반사입니다.
또한, PTSD를 겪고 있다고 해서 사람 자체가 바로 폐인이 되거나 24시간 내내 공포에 떨면서 지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가시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이를 판단해 치료하는 것 또한 몹시 어려운 과제입니다.
지금도 어딘가의 군영에서는 병사들이 이에 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밤에는 안정제를 복용하거나,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월남전 참전군인들이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악몽 때문에 신경정신과나 종교 시설을 방문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으며, 자살이나 자살미수로 이어지는 일도 흔히 보이는 사례임을 알 수 있듯이 말이죠.
한국전쟁이나 월남전을 생각해보면, 남한인들에게 있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조국수호를 위한 전쟁이요, 월남전 역시 반공이라는 강력한 명분이 있었지만, 그 애국심이나 애향심도 PTSD 자체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전쟁으로 인한 PTSD는 심리학 역사상 처음으로 '남성에게도 정신질환의 발생여지가 있다.'라는 사실을 증명해준 사례이며, 정신질환의 대상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간 전체로 확장되어 연구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서양철학사에서 거론된 전쟁론에 대해서도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를 군사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므로, 군주는 전쟁의 준비와 실행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현실의 다양하고 복잡한 측면을 자신의 이론 속에 포섭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홉스는 전쟁을 미화하거나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국가의 등장을 통해 인간 사회의 안정과 역사적 발전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틀에서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 을 통해 전쟁을 제도적 차원에서 방지함으로서 세계 평화와 질서 유지를 꾀할 것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세계시민권이라는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할 것과, 국가의 헌법이 공화주의에 입각해야 할 것임을 내세웠죠.
이는 오늘날의 인권, 민주주의 개념과 유사하며, 평화라는 인류 궁극적인 문제를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 한 사례로 꼽힙니다.
그리고 1920년 탄생한 국제 연맹의 이념을 통해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계승됩니다.

칸트에 이어 헤겔은 전쟁 상황에서 비전투원에 대한 공격 금지나 초토화 작전 금지 등의 국제법 존중을 강조했으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에서 발생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사건처럼 기존의 국제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발생하는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이나 최근의 러우 전쟁에서 발생한 전쟁범죄 등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헤겔의 이상적인 이론이 오늘날의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인간과 사회 뿐만 아니라, 전쟁의 영향권에 있는 모든 것.
즉, 전쟁터와 그곳의 모든 것이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습니다.
환경의 파괴와 오염은 기본이요, 자원과 물자의 낭비,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는 생태계와 인간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역시 생태계의 구성원이므로 이런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인간의 정신 세계 역시 그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들은 전쟁 현상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거나 거부한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국가 운영과 정치 활동 등에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필요악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쉬이 바뀌지 않을 것이며, 이에 대한 대책을 다방면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전쟁보다 평화가 더 좋다는 이상적인 탁상공론 대신, 역사 속에서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전쟁이라는 재앙이 또 벌어졌을 때, 이를 수습할 대책이 여러모로 필요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지기 바라며, 플라톤의 전쟁 명언과 함께 이번 글을 마무리합니다.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볼 수 있다." - 플라톤
참고문헌 : 충남대 철학과 서영식 교수 논문
「서양 근대의 전쟁담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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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네버마인드/251번 환자 - 환자의 트라우마로 보는 라캉의 사상

오늘 소개해 드릴 작품은 2015년 발매된 Flying Mollusk 사의 PC게임 <네버마인드>입니다.
구매자들이 지불한 금액으로 추가적인 콘텐츠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의 퍼즐/호러 인디 게임으로, 스팀을 사용하고 계시다면 언제든지 게임을 구매하여 플레이해 보실 수 있습니다.
공식으로 한글자막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주된 내용은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환자의 정신세계를 탐험하여,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업체 뉴로스탤지아 (Neurostalgia Institude) 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정신과 의사이자 뉴로스탤지아 사의 신임 정신탐험 요원이 되어 환자들의 정신세계를 탐험하는 줄거리의 게임이 되시겠습니다.
2019년 기준 현재 튜토리얼을 제외한 4명의 환자가 업데이트되어있으며, 각자 다른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있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정신세계 속에 부여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리뷰할 대상은 튜토리얼을 마치고 플레이어들이 만날 수 있는 첫 환자인 251번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게임을 시작하기 전 환자의 대한 간략한 정보와, 당사자의 짤막한 인터뷰가 출력된 후 게임이 시작됩니다.

251번 환자
이 환자는 시선 공포증이 있으며, 어머니의 사망 후 증상이 더 심해진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트라우마와 관련된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검사 이전 환자의 진술
음...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무거나 상관없나요?
그래요... 음... 그러니까...
전 20년 동안 부동산 일을 했어요.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대학을 졸업했고요.
결혼은 한 적 없어요. 외동딸이고요.
늘 고양이를 좋아했어요. 하하...
교회는 질색이에요. 윽!
늘 혼자 지내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절 보는 시선이 정말 싫거든요. 특히 요즘에는 더 그래요.
솔직히... 뭐랄까, 몇 년 전까지는 저도 평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 그때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자기를 그냥 쳐다보는 기분 같은 거 느껴본 적 있어요? 방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전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거에요. 나한텐 말해주지 않고요.
모르겠어요. 그냥...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면 기분이 안 좋아져요. 죄책감 같은 게 들고 막 화가 나요.
어릴 적에는 꽤 행복했던 것 같네요.
아빠는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요. 엄마 말로는 자동차 사고였대요. 전 기억은 안 나지만요. 제가 너무 어렸을 때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전 아빠랑 늘 직소 퍼즐을 맞추고 놀았어요.
아빠는 사업하시는 분이었고요. 늘 우리 집 돈 문제 얘기를 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엄마랑은 사실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긴 하네요.
*웃음* 아... 엄마는 와인을 좋아했어요. *웃음*
아... 정말... 왜 이렇게 돼버린 건지 모르겠네요. 어릴 땐 아무 문제 없었는데...
인터뷰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의 목표는 환자의 정신세계를 탐험하며 찾아낼 수 있는 그림 형태로 된 총 열 가지의 단서를 확보한 후, 그 중에서 진실된 단서 5개를 찾아내 순서에 맞게 배열하는 것입니다.


심각한 환자의 정신상태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는 집들

찻잔과 곰인형

청구서로 보이는 우체통의 편지

게임 내에서는 플레이어의 심박을 감지하는 장비를 추가구매하여 플레이 하기 전 PC에 장착할 겅우 심박수가 올라갈 때마다 배경의 분위기가 더 무섭거나 기괴하게 변하는 바이오피드백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보려면 불을 꺼야 한다는 뜻의 메시지와 옆에 놓인 전등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계속 볼 수 있는 찻잔

우유/총/슬픔 을 의미하는 그림
(소, 총기 허가증, 그리고 초상화에서 지워진 부친의 얼굴)

이후 이 암호를 그대로 금고에 입력하면 또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주방에 들어서자 갑자기 우유가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냉장고

냉장고를 열자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나고 아버지란 태그가 붙은 시체 가방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죽은 모양입니다.

수많은 시체 가방은 덤

이번엔 차고로 들어섭니다. 차고 뒤쪽에 또 길이 나 있고 차가 지나다니고 있습니다.

차도를 무사히 건너자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순간이동.
시끄러운 차량의 클랙슨 소리와 함께 "기억해 내(Figure it out)" 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길을 찾자 보이는 기괴한 얼굴이 가득한 풍경과, 부친으로 보이는 권총자살한 남자의 시신이 그려진 그림.
심지어 이 얼굴들은 플레이어가 아무리 움직여도 동공의 시선을 플레이어에게 고정하고 있습니다.

단서를 찾아 탈출하자 이번에는 교회의 예배당이 보입니다.
그리고 예배당에 앉은 마네킹들의 시선 역시 플레이어를 향해 고정되어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 원반에 찻잔을 집어다 붙이면

찻잔에 물이 담기며 원반이 회전을 하고, 원반 중앙의 눈이 떠집니다.

그리고 부친의 시신이 담긴 관짝이 열리며 마지막 단서를 획득하죠.

그렇게 열 가지의 단서를 모두 모으면, 이제 마지막 단계인, 단서의 배열만이 남게 됩니다.
반은 진실, 그리고 반은 거짓.
게임 내의 단서 (5개는 진실, 5개는 거짓)
-난 차를 마시고 있었지. 그 날은 정말 더웠다! 엄청 목이 말랐던 기억이 난다! TRUE
-아빠와 아빠의 편지다. 우체부 아저씨가 새 편지를 가져 올 때면 아빠는 나랑 놀아주지 않으셨다. FALSE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는 갈아 만든 포도 주스였다. 냄새는 정말 최악이었다. FALSE
-어머니와 아버지는 거의 집에 있는 날이 없었다. 꽤 외로웠던 것 같다. FALSE
-엄마는 아빠가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는 몹시 슬퍼하셨다. 엄마는 내가 그 질문 하는 걸 싫어했다. FALSE
-내가 우유를 부으려 하고 있다. 내가 난장판을 만들어 놨다. TRUE
-아빠가 차를 몰고 출근할 때, 엄마는 늘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FALSE
-내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아빠는 주로 위층에서 일을 하셨다. 많이 화가 나신 게 아니라면 어쩌면 아빠가 나랑 퍼즐 놀이를 해주실지도 몰라. TRUE
-아빠가 뭘 드시는 거지? TRUE
-...(자살한 부친의 시신) TRUE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어린 시절의 환자는 당시 바깥 마당에서 티타임 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목이 말라 집으로 들어가 우유를 마시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수로 우유를 바닥에 쏟아버렸고, 어쩔 줄 몰랐던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샤워 중이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부탁하라며 그녀를 위층으로 올려보냈습니다.
그녀가 위층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던 순간, 그녀의 아버지는 총을 입에 물고 있었고 그녀를 바라본 채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보게 된 기억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어머니는 교통사고 이야기를 꾸며내어 사건의 모든 전말을 잊게 만들었지만, 환자의 무의식 속에서는 교통사고는 거짓이며 모든 전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순간 방어기제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녀의 시선공포증은 심해져갔으며, 그로 인해 플레이어를 찾은 것이었죠.

이 이야기를 라캉의 이론을 통해 해석해 보겠습니다.
1. 교회=자살을 금지하는 곳이므로, 교회를 사랑하게 된다면 반대로 아버지를 증오할 수밖에 없어서, 아버지를 증오하는 길을 피하고자 무의식적으로 교회를 질색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 사람들이 보는 시선은 곧 내가 나 자신을 보는 시선이요, 어릴 적 환자는 아버지의 자살(그리고 아버지의 시선)과 직면하게 되면서, 본환상이 형성되었는데 이때의 본환상이란 '아버지가 죽은 것은 나 때문이다.'라는 죄책감으로 추측이 가능합니다.
죄책감은 지속적으로 '시선'이라는 단어에 달라붙고, 시선을 연상시키는 '사람들의 시선'을 환자가 피하고 혐오하게끔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웃음* 아... 엄마는 와인을 좋아했어요. *웃음*" 이 부분 또한 라캉의 '인간은 기표의 우연성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데, 와인은 포도로 만들며, 포도주스는 와인과 아버지의 자살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 중의 하나로도 볼 수 있습니다.
4. 환자는 그 당시의 기억을 잊은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설명에 의해 강제로 그 기억을 다른 식으로 '해석당하게' 조작된 것이며, 이는 어머니의 시선과도 상응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분노는, 당시의 진실에 대해 함구하도록 명령한 어머니의 시선에 대한 무의식적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망 감정은 어머니가 죽었으면, 그리고 어머니가 사라짐으로써 당시의 진실을 자유롭게 해석하여, 궁극적으로는 당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기억은 하지만, 그 기억의 무의식적 힘(실재계)로부터 벗어나고자 상징화하고자 하는) 환자의 근원적인 소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증상이 심해짐으로써 플레이어를 찾아온 것 또한 무의식적인 환자의 욕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디 라캉의 철학은 프랑스 철학답게 오리지날한 전문용어가 많고 이를 본 글에서 일일이 다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이론에 대한 설명은 배제하고 이렇게 비전공자들도 무리 없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서술하는 것으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라캉은 욕망의 근원이 개인의 결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주장했고, 그 결여로 인해 착각과 환상을 그리게 되고 그것을 염원, 소망, 혹은 몽상하는 것이 삶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을 향유라 하는데 이 향유라는 것은 착각이고 환상이기 때문에 완벽한 충족도 결여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 어중간함을 극복하는 것이 라캉철학의 주된 목표요, 이를 위한 끊임없는 상황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죠.

<네버마인드> 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현대프랑스철학을 전공했지만 주전공도 아닌데다 전공수업에서도 맛뵈기로만 가르쳤던 라캉에 대한 이야기와 연관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 글은 몇 번이고 쓰기를 망설일 정도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코로나가 진정이 되면 추후 다시 겨스님을 찾아뵌 후 관련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또한 다른 에피소드에 대한 리뷰에 대해서도 꽤나 망설여지는 편입니다.
각기 다른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를 모두 같은 이론으로 명료하게 분석하는 것도 난제요, 게임 내에서의 구현된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꽤나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추후에 또 리뷰할 수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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