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네버마인드/440번 환자 - 일류 피아니스트의 트라우마를 통해 보는 강박증세에 관한 고찰
2022.10.18
이번편 역시 지난번에 이어서 <네버마인드>의 다음 스테이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다루게 될 환자는 튜토리얼을 포함한 전편의 세 스테이지를 모두 클리어할 경우 조우할 수 있는 440번 환자의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게임에 대한 소개와 정보는 전편 글을 참조하시길 바라며, 바로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하죠.
전편보기
251번 환자

의뢰인은 유명인사로서 최근 직업과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과도하며 해로운 죄책감을 보입니다. 의뢰인을 Neurostalgia Institute에 소개한 친구나 동료들은 의뢰인이 의뢰인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심오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현했습니다.
이번 인게임 배경에서 피아노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이는 걸로 봐선, 이번 의뢰인은 음악과 관련된 유명인사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피아노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검사 이전 환자의 진술
걱정은 고마워요. 애써주신 것도요. 그런데 과장이 좀 심하네요.
우리 솔직해지죠. 난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요. 실수하는 게 당연해요.
공연 때 있었던 일은...어딘지 몰랐어요, 끔찍했어요!
네, 창피해요. 수치스럽기까지 해요!
하지만... 이젠 그게 내 현실이겠죠.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날들은 이제 지나갔죠 - 거기에 있었던 일은 그저... 새로운 일상이죠.
그런 실수를 잊는 건...
어릴 때부터 내 좌우명은 항상 이거였죠.
"고통이 날 훌륭하게 만들고, 완벽함은 고통을 가치 있게 만든다."
그래요, 죄책감이 들어요. 누군들 안 들겠어요? 특히 "나"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죠.
그런데 그게 지나치다고요?
변덕스럽다고요?
강박적이라고요?!
이봐요, 내 친구들과 동료들 - 다들 "나쁜 뜻" 아니란 거 알아요, 다만... 이해를 못 할 뿐이에요.
이해한 적이 없죠.
난 "평생" 완벽을 추구했어요. 일단 진정한 완벽을 맛본 사람은 - 결코 잊지 못하죠.
그 공연...
난 관객을 실망시켰어요.
오케스트라도 실망시켰어요.
나한테도 실망했죠.
난 끔찍한 실수를 저질러 날 믿는 모두를 실망시켰어요.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그런데도 당신이나 나나, 당신네 그 빌어먹을 잘난 기술이나 시술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요!
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늘 그래 왔으니까요.
게다가 솔직히 말해, 이게 트라우마와 관련 있다니 과장이 아주 심하네요.
저 때문에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인제 와서 그런 게 다 왜 중요하죠?
아무래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일생 동안 내내 이런 강박증세에 시달려왔으며, 알츠하이머로 인해 이게 더 악화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피아노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방이 보입니다.
그리고 의뢰인의 단서를 모을 수 있는 판과 물망초가 핀 뇌 형태의 모형을 볼 수 있죠.

물망초의 꽃말은 "진실된 사랑." 그리고 "나를 잊지 마세요."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의뢰인이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와 무언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에서 나가 주변 사물들을 살펴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임을 보여주는 포스터들이 보입니다.
의뢰인은 일류 음악인이었던 모양입니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오케스트라 무대가 보이는군요

의뢰인의 기억을 조사하기 위해 피아노에 앉아 보겠습니다.
지문이 찍힌 건반에서 연주를 할 수가 있군요. 하지만 악보가 없어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연주를 해보자, 메트로놈이 가득한 필드로 이동해버렸습니다.
의뢰인이 일류 피아니스트였던 만큼 음악과 박자에 의한 강박관념이 의뢰인의 마음을 제대로 잠식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메트로놈의 추가 좌우로 움직이며 지면을 강타하는데, 이 범위 안에 플레이어가 서 있으면 데미지를 받고 필드의 시작지점으로 돌아와 버립니다.


당황하지 말고 메트로놈을 요리조리 피해 필드 내의 단서를 찾아 봅시다.

단서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자, 청록색의 메트로놈이 보입니다.

안에 통로가 있군요.

다시 게임을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오자 뇌 위에 핀 물망초가 시들었습니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걸까요?

다시 방 안의 통로를 따라가보자, 방 불빛이 어지럽게 깜빡이면서 부정적인 문구들이 적힌 액자가 보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거나, 더 슬프게 울어라."

"너의 실수는 모두의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모두가 실패를 싫어해."


통로를 빠져나오자 설명서와 함께 악기 형태의 퍼즐을 볼 수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설명서와 함께 악기의 연주법을 구사하여 푸는 퍼즐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강박적인 가르침과 함께 의뢰인의 감정변화를 보여주는 듯한 드럼 형태의 퍼즐 설명서
희생이라고 쓰여진 부분은, 손가락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손을 다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강박적인 연습을 강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서는 강박관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퍼즐을 풀자...



마지막 퍼즐을 풀고 나가자 이번에는 의뢰인을 비난하는 포스터나 신문기사들이 보입니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공연장에서 실수까지 하게 된 모양입니다.



다시 오케스트라 무대로 돌아오자 이전의 퍼즐과 유사한 피아노 형태의 퍼즐이 보이는군요.
그런데, 건반을 하나하나 누르자 설명서가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합니다.
필연적으로 실수를 할 수밖에 없겠군요.
피아노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다시 어디론가 이동하게 됩니다.



통로를 따라 들어선 곳은 의뢰인의 집으로 추정되는 공간과, 퍼즐에서 본 그 피아노였습니다.

다시 피아노를 조사하기 위해 피아노 뚜껑을 열자...


방이 피로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강박적인 연습으로 인해 생긴 손의 상처는 피가 날 정도로 심각했던 걸로 보입니다.

방이 피로 차오르면서 이동한 공간은 손가락 끝에서 피를 흘리는 청록색 손과 피아노 건반으로 이루어진 공간.

주변을 둘러볼때마다 피아노 건반으로 된 바리케이드가 길을 막고 있으며, 손가락이 부러져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떨어지는 손가락을 요리조리 잘 피해가면서 필드 주변의 단서를 수색해 보겠습니다.

단서를 모으자 막힌 길이 뚫리며 점차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손에서 쏟아지는 피는 어느새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단서를 찾아내자,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친 손과, 피아노 건반, 그리고 필드 내에서 끊임없이 흩날리는 물망초 꽃잎,
강박증으로 인해 손까지 희생을 했지만, 알츠하이머로 인해 더 악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출구를 발견했으니 다른 곳에서 더 조사해보겠습니다.

다시 시작지점으로 돌아오자, 중앙에 있던 뇌 모형에 있는 물망초가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그 색이 없어졌군요.
의뢰인의 트라우마가 플레이어의 치료로 인해 완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알츠하이머로 인해 잊혀지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다시 통로를 따라가자, 알츠하이머가 의뢰인에게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듯한 포스터도 보이는군요.

다시 도착한 무대,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으스스하군요.

또 피아노 퍼즐을 풀어야 하는 것 같은데...

다행히 이번에는 피가 맺힌 악보와 지문이 어느 건반을 쳐야 할 지 알려줍니다.

지문을 따라 피아노 건반을 누르자 무사히 오케스트라가 종료됩니다.
방금 전까지 으스스했던 분위기가 점프스케어 대신 이런 연출을 위한 거였다니 정말 다행스런 일입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으니 무대에서 퇴장.



구태여 음악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인은 그 성과에 관계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죠...
"예술은 가볍고 즐거워야 한다"와 "예술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늘 화제가 되어 대립하는 예술이 추구해야 할 두 가지의 길이 있지만, 어느 길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단서까지 모두 찾아낸 후 시작지점으로 되돌아왔으니, 이제 이 단서들을 언제나처럼 배열해 봅시다.
이번도 다섯 개는 진실, 나머지 다섯 개는 거짓.
-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기억을 잃은 걸 상기했죠. (FALSE)
- 부모님께서는 유명한 피아노 강사를 고용하셨어요, 최고가 아니면 안 되니까요. (TRUE)
- 그는 제게 늘 실패를 두려워하라고 가르쳤어요. (TRUE)
- 모두가 완벽하진 않다는 걸 깜빡했어요. (TRUE)
- 다른 아이들처럼 저 역시 모든 것에 딱히 "재능" 이 있지는 않았어요. (FALSE)
- 한 번은 고통스러운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제 손이 대가를 치렀죠. (TRUE)
-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한 결과, 저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됐어요. (TRUE)
- 부모님께선 관심도 없어 보였어요. (FALSE)
- 다른 아이들이 제 손을 보며 놀렸어요 (FALSE)
- 그는 저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어요. (TRUE)

다시 밝혀지는 진실
예상했던 대로 의뢰인은 일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피아노를 배워 왔고 부모님의 소개로 유명한 피아노 강사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피아노 강사는 지나친 완벽주의자였으며, 의뢰인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컸다는 점이 문제였죠.
그리고 의뢰인이 어릴 적 피아노 연습을 하던 도중 실수를 하자, 강사는 의뢰인을 계속 닦달하다 결국에는 그대로 피아노 건반 뚜껑을 내리쳐 닫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의뢰인은 실패에 대한 공포로 인해 피아노에 대한 트라우마가 발생했고, 훗날 "황금의 손"이라고 불릴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일류 피아니스트가 되었지만, 이게 모두 그 트라우마로 인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였으며, 그녀의 정신을 좀먹기 시작했던 거였죠.
그리고 이게 극에 달하자, 결국에는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실수를 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던 겁니다.
게다가 의뢰인이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는 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었으며, 의뢰인의 어릴 적 트라우마는 되려 알츠하이머로 인해 점차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죠.
뉴로스탤지어와 플레이어의 활약으로, 트라우마의 진정한 원인을 찾아낸 의뢰인은 알츠하이머도 때때로는 좋은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플레이어의 정신 탐험을 통해 자신의 잊혀진 기억을 찾아내 주어서 감사하다며,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게임 속의 이야기가 끝났으니 다시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정도면 됐어 VS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어
이 두 가지의 선택지 중 어느 쪽 성향이 더 강하신가요?
후자의 성향이 더 강한 사람들은 과거의 성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고, 크고 작은 성취에 기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더 몰아붙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죠.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최고를 추구하게 되고, 조그만 성취에도 무감각해지며, 만족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최고가 되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든 남을 이기려는 욕구 역시 발생하죠.

이런 생각과 태도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팀원들의 작은 성취를 무시하고 계속 팀원을 갈구는 팀장으로 이루어진 팀이
과연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비슷한 소재의 영화인 <위플래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뉴욕의 셰이퍼 음대에 입학한 주인공 앤드류는
최고의 지휘자이지만 동시에 최악의 폭군인 플레처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플레처는 누구든 성공으로 인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폭언과 폭력을 마다않으며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교육방식을 고수하고 있었죠.
오죽하면 어록 중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가치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야"
라는 말이 영화 내 명대사로 꼽힐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앤드류는 이런 플레처의 커리큘럼에 휘말려,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한 반 미치광이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애에 쓸 시간이 없다며 연인과 결별하고, 교통사고가 나도 병원에 가지 않고 연습을 하겠다며 달려오는 등의
교수의 눈 밖에 나기 전까지 계속 그에게 인정받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죠.
영화의 타이틀은 <위플래시>는 영화 내에서 주인공 앤드류가 직접 연주하는 곡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직역할 경우 앤드류와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플레처의 "채찍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 역시 440번 환자의 피아노 강사처럼 마치 혹독한 훈육을 정당화하듯이 충분히 고통을 느끼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 일류가 되기 위한 역경과 고난은 충분히 이겨내야 할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굳이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이런 플레처의 커리큘럼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학생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플레처가 교수직을 그만두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런 의문을 남기게 됩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할 가치가 있을까?
또한 그런 삶은 정말로 행복할까?

인간은 절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존재로서 인간은, 인간다움이라는 또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습니다.
늘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인해 피로를 느끼고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완벽을 요구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완벽이 자신을 늘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근본적인 이유 역시 무엇인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성장과 성공을 위해선, 때때로는 자기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이 우리를 몰아붙이는 것보다 더 강하게 세상을 몰아붙여야 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과유불급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끝까지 갈 준비 역시 되어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성취에도 기쁨을 누림으로서,
그 만족감을 통해 내면에 잠들어 있는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과정 역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는 일상이 되기를 기원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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