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쳐드 / 악마를 보았다 / 방황하는 칼날- 복수극에 대한 개인적인 논평

2020.07.26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2010년 상영된 로버트 라이버먼의 영화 <토처드>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복수를 걸심하고, 살인범을 직접 잡아 모진 고문을 가하는 흔하다면 흔한 소재의 복수극 영화죠.

오늘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복수극 영화를 주제로 게시글을 써내려가겠지만 일단 이 작품으로 이번 글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수심은 극단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입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으로 보면 복수심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생물에 대해 공격적인 감정을 품게 하는 유전자의 명령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자신이 되려 피해를 입을까 다른 동물들을 함부로 공격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생존율이 올라갔기 때문이죠.

문명과 사회가 갓 탄생했을 때에는 법이 개개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과 주변인물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복수는 미덕이요,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멸시받는 경우가 보통이었습니다.

특히 체면과 의리를 미덕으로 여기는 세력들은 대체로 복수를 당연시했고, 종교적 성향이나 문화가 강한 세력들은 주로 복수보다 관용을 중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 집단, 인간 사회가 체계화되면서 크고 작은 복수가 늘어나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 폐해가 너무 커, 근대법체계가 정립되고 복수를 통한 자력구제(自力救濟) 금지가 근간이 되면서, 차츰 법률을 통한 제도권적 해결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법률이 강화되고 신분의 형평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존심이나 영광에 집착하기 보단 사회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엔 보통 집단 따돌림이나 성폭행의 문제를 겪고도 아무 말도 항의도 못 하고 당하거나, 두려움 때문에 사회나 선생님, 가족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아예 참기만 해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아지는 편이죠.

이렇듯이 법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이 계속 지속되다면, 복수가 신성시되던 과거의 인식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복수를 소재로 한 여러 작품들은 이의 양면성을 모두 드러내고 있으며, 가해자가 되어버린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최후에는 복수를 끝내고 난 복수자의 쾌감이나 이후의 공허감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기도 하고, 복수라는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거나 법률의 벽에 가로막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를 오늘 소개하는 영화 <토처드>애서는 이렇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사 크레이그와 부동산 중개업자 엘리스 부부는 아들 벤자민을 둔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앞 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아들이 갑자기 갑자기 집에 쳐들어온 납치범에게 납치를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죠.

 

 

 

 

 

 

갑작스러운 유괴 사건에 가족은 빠르게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이미 한 발 늦은 후였습니다.

 

유괴범은 우울증에 정신질환까지 앓고 있는 사이코패스였으며, 납치당한 벤자민이 살려달라고 빌자, 그는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벤자민을 목 졸라 살해하죠.


 

 

우여곡절 끝에 유괴범은 검거되었고 교도소로 이송되기 시작하지만, 부부는 법원이 내린 판결만으로는 유괴범이 치를 충분한 대가가 되지 않는다며,

 

직접 그 유괴범을 잡아다 복수할 계획을 꾸밉니다.

 

그리고 우연히 범인을 호송하던 차량이 도로에서 순록과 맞닥뜨려 전복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호송 차량을 미행하던 부부는 차량에서 유괴범을 빼내어 그들이 고문실로 손수 개조한 집으로 끌고 옵니다.

 

 

 

 

그리고 의사인 남편 크레이그의 통제 하에, 유괴범은 쉽게 죽지도 못한 채 부부에게 갖은 고문을 받게 됩니다.


 

모진 고문이 계속되자, 유괴범은 차차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이지만, 부부는 이를 거짓말이라 여기며 더더욱 잔혹한 고문을 감행하게 되죠.

 

결국 유괴범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부부의 집에서 탈출하고, 자기 자신이 그들의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에 용서를 비는 사과문을 남기고 집 근처의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맙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부가 잡아온 유괴범은 사실 다른 범죄자였습니다.

 

전복사고가 일어났던 호송 차량에는 벤자민의 유괴범 뿐만 아니라 금융사기 혐의로 구속된 또 다른 범죄자가 타고 있었고, 진범은 이미 차량에서 탈출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스와 크레이그는 차량에 남겨진 또 다른 범인을 잡아다, 모진 고문을 행했고, 그는 끝내 정신이 망가져 결국 자신이 그들의 아이를 유괴하고 살해했다는 망상에 시달리고 만 것이었죠.


 

그리고 탈출한 진범은 출동한 경찰에게 다시 잡혀 버렸으며, 애먼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만 부부는 결국 집을 떠나 행방이 묘연해지며 이야기는 찝찝하게 끝납니다.

 

<토처드>였습니다.
앞서 이야기하다시피, 복수극 이야기는 보통 가해자가 되어버린 피해자, 최후에는 복수를 끝내고 난 복수자의 쾌감이나 이후의 공허감, 복수라는 행동이 잘못되었음이나, 법률의 벽에 가로막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본 영화는 이를 제 3의 인물을 대입하여 반전을 선사하면서, 복수에 대한 인식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복수극 소재의 작품 중에서 리뷰 대상으로 뽑았던 것 같습니다.

 

같은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영화 <악마를 보았다> 로 넘어가 봅시다.

약혼녀를 죽인 살인범 장경철(최민식)을 끝내 잔인하게 죽여 복수를 끝내는 데 성공한 김수현(이병헌)은 최고의 복수를 하고 약혼녀의 원수를 갚았다는 후련함의 폭소와, 복수를 위해 모든것을 잃고 결국 자신 또한 악마가 되어버렸다는 광소가 뒤섞인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남긴채 비틀거리며 새벽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끝으로 영화가 끝나죠.

마치 니체가 <선악의 저편> 에서 언급한 심연과도 비슷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니체가 복수에 대해 이런 경각심을 가져야 되는 말만을 남기지만은 않았습니다.

"만약 원수가 명예를 훼손했다면, 복수로 그것을 복구할 수 있다. ... 또한 복수는 내가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거기서 비로소 합의와 조정이 의미를 가진다."

라고 말하기도 했죠.



 

이번에는 그로부터 4년 후의 영화 <방황하는 칼날>을 살펴 보겠습니다.

주인공이자, 질 나쁜 고등학생 무리에게 강간과 죽임을 당한 딸의 아빠 이상현(정재영)은 결국 가해자와 가담자들을 하나하나 척살해 나가지만 결국 경찰에게 사살당함으로서 제지당합니다.

그리고 담당 형사는 이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 생기지 않게 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제 3자들이 복수에 대해 비난을 하는 주된 근거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견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복수심의 원인과 배경을 본다면 이것이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난감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이 현실사회이기도 합니다.

법에 의한 해결이라는 합법적인 복수도 결국은 완벽하지 않으며 법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을 뿐더러, 현존하는 법들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며 법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바뀝니다. 심지어 헌법조차도 바뀔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원칙적인 반응을 되풀이하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도 못합니다.

복수의 연쇄 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복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니 개인에게 절대로 복수하지 말고 법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주지도 못합니다.

심지어 사회적으로도 복수가 전혀, 절대 없는 사회가 바람직한가도 사실 의문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죠.


 

복수를 하려면 관짝을 두 개 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아끼려면 관짝을 더 많이 짜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 중 하나는 자기 것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제 의견으로 이번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겪는다면, 훗날 제 자식들이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다 다진 고기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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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헌트 시리즈 - 미디어 내에서 허용되는 표현의 자유와 그 범위에 대한 고찰


2020.07.07

이번에 소개해 드릴 작품은 GTA시리즈를 개발한 회사로도 유명한 락스타 게임즈 사의 작품 <맨헌트> 시리즈입니다.

본래 맨헌트란 단어는 위험한 지명수배자나 범죄자를 추적하기 위해 병력을 동원하고, 시민의 제보를 받는 등 포위망을 좁히는 활동을 총칭하는 경찰 용어지만, 본 작품에서는 이를 직역하여 인간 사냥이라는 의미로 내세워, 철저히 폭력성과 잔인함, 그리고 범죄에만 초점을 둔 게임임을 강조한 것이 특징입니다.





제작사는 GTA 시리즈가 발매를 시작할 때부터 현재까지도, 게임 내의 폭력성과 범죄를 동반한 컨텐츠들로 인해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었고,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락스타의 사장 샘 하우저(1971~현재)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게임 내에서의 폭력성과 범죄, 잔인성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했고, 2003년, 맨헌트 시리즈의 첫 작품인 <맨헌트>가 탄생하였습니다.

물론 언론과 게이머들의 비판과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고 오락소프트웨어등급 위원회(ESRB : Entertainmemts Software Ratimg Board) 에서도 오직 그 폭력성만으로 일반적인 포르노와 같은 취급을 받는 심의거부/청소년 이용불가에 해당하는 AO(Adults Only)등급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2019년 기준으로 폭력성으로 인해 AO등급을 받은 게임은 3개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우저는 이에 질세라 2007년, 맨헌트 시리즈의 후속작인 <맨헌트2>를 보란듯이 내놓습니다.

그리고 발매 직후 논란이 더더욱 커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죠.
 

 

게임이 폭력적이면 대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을까 궁금해하시는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내용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쇄살인마이자 4급 수배범인 <맨헌트> 의 주인공 제임스 얼 캐시는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약물주사형에 처해지지만, 모종의 이유로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포르노 업계의 대부인 리오넬 스타크웨더가 그를 거두었으며, 스타크웨더는 캐시를 살려 준 것을 내세워 캐시에게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바로 자신이 매수한 도시 내에서 스너프 필름 (자살이나 살인을 촬영한 영상) 을 제작하기 위해, 도시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라는 것이었죠.

캐시는 스타크웨더의 음모를 파헤치며 도시의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죽이다, 결국 자신 역시 이용당해 죽을 위기에 처하자, 결국 스타크웨더까지 죽이고 도시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행방이 묘연해지며 이야기는 끝나죠.

 

게임 내에서는 실제 사람을 묘사한 캐릭터들이 서로를 잔인하게 해치는 모습이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2003년 작품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직접 다가오는 잔혹성이 높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모션이나 사운드 등의 연출만큼은 절대로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있을 법한 모습으로 세밀하게 연출하고 있죠.

둔기로 사람 머리를 산산조각내는 것은 물론이고, 비닐봉투를 사람 머리에 씌워 질식사를 시키거나, 정육점 고기칼로 사람 목을 썰어 분리하기도 합니다.

 

후속작인 <맨헌트2> 에서는 자각이나 기억이 없는 완벽한 인간 병기를 만들기 위해 서로를 의식하지 못하는 이중인격을 만드는 실험 <피크맨 프로젝트>가 실시됩니다.

그 연구원 중 하나이자 주인공인 다니엘 램 박사(좌)는, 자신의 몸에 살인마의 인격 "레오 캐스퍼(우)" 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으나, 실험은 실패하여 다니엘과 레오는 서로를 의식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다니엘의 몸에 깃든 레오의 인격은 통제할 수 없었고, 레오는 실험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몸을 차지하려 하죠.

플레이어는 다니엘이 되어 레오에게 맞서서 다니엘 램으로 남을 것인지, 혹은 레오에게 패배하여 살인마 레오로서 각성할지 선택하게 됩니다.

 

맨헌트2는 2003년에서 2007년으로 넘어간 만큼 그래픽의 품질도 조금 올라간 데다 전작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은 잔혹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전작의 연출을 대부분 계승하는 것은 물론이요, 더더욱 잔인한 연출이 추가되기까지 했습니다.

면도칼로 사람 몸에 마구잡이로 시뻘건 줄을 긋고, 플라이어로 사람의 뒷목 생살을 잡아뜯기도 하며, 심지어는 정원용 가위를 등에 찔러넣어 척추를 끊어버리기까지 하죠.
 

 







맨헌트 시리즈는 심각한 유혈과 신체훼손, 폭력, 게임 내의 거친 욕설. 그리고 2에서는 이에 인체실험과 마약, 성적인 묘사까지 제한적으로 추가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수입이 금지되기까지 했으며, 하드코어한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마져 이런 작품을 왜 내놓았냐며 비판할 정도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지만 락스타는 이를 되받아 치기라도 하듯, 2019년 연말에 새 시리즈인 <맨헌트3>의 트레일러 영상을 내놓기까지 했습니다.

해당 시리즈에 대한 영상과 발매 여부는 끝내 루머로 밝혀졌으나, 이마저도 논란의 여지를 불러 일으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제아무리 청소년 이용불가라 해도 플레이어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위 때문에 플레이어들과 언론에서 적잖이 화제가 된 것이 그 이유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장르나 수위의 조절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야말로 미디어 컨텐츠의 표현력을 올리고 작품성을 부각시키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런 극단적인 소재의 작품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역시 듭니다.

미디어 컨텐츠들에 대한 검열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해 볼 여지가 있으며, 그 기준 역시 또 다른 희대의 난제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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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콜롬바인 대학살 RPG - 게임을 통해 기록하는 중범죄 이야기와 언론에 대한 질타

2020.04.01

이번에 소개해 드릴 작품은 영화감독 대니 레돈이 2005년 4월에 만든 <슈퍼 콜롬바인 대학살 RPG>라는 게임이 되겠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 주의 콜롬바인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을 주제로 제작한 인디게임이며, 이하의 홈페이지에서 게임에 대한 정보를 열람하거나 다운로드를 할 수 있습니다.

http://www.columbinegame.com/

제작자 대니 레돈은 이 무시무시한 사건을 게임으로 제작하는 것으로서 아카이브 처리함과 동시에, 사건이 일어난 후 언론의 반응을 비판하고자 이러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게임의 내용과 함께 설명해 나가도록 하죠.

 

게임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는 사건의 범인 에릭 해리스(우)와 딜런 클레볼드(좌) 가 되어 이들이 범죄 계획을 세우는 내용인 1부와, 사건을 거행하여 교내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2부, 그리고 사건 이후 자살하면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내용인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범행을 계획하기 위해 그들이 총기와 폭발물을 사들이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들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범죄가 아닌, 철저히 계획된 범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스터에그 아이템으로 생전 그들이 좋아했던 가수 "마릴린 맨슨"의 앨범도 등장합니다.

 

 

 

 

 

2부에서는 본격적인 범행 과정을 게임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실제로 사건 내에서는 교사 1명과 학생 12명으로 총 13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게임적 허용을 통해 희생자들은 일체의 신상정보 언급이 없는 단순한 캐릭터로만 등장하며, RPG게임의 특성상 해리슨과 클레볼드가 이들을 죽이고 스코어와 경험치를 얻는 것으로 구상되어 있습니다.
희생자의 수가 늘어난 것은 덤.
 

 

 

마지막으로 플레이어가 이 두 범인의 레벨을 충분히 올렸다고 판단할 경우 3부로 넘어갈 수 있는데, 여기서는 사건처럼 두 사람이 자살을 한 후 지옥으로 가서 지옥의 악마들과 맞붙는 내용을 다룹니다.

그리고 지옥과 악마들은 생전에 그들이 즐겨 했던 게임 둠(DOOM) 시리즈를 모티프로 하고 있죠.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즈음, 기자들은 이들의 폭력성과 범죄의 위협을 그들이 좋아했던 마릴린 맨슨과 둠을 이용해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폭력적인 미디어 컨텐츠들이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말이죠.

 

 

레돈은 사건을 게임으로 제작하는 것을 통해 이러한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싶어했고, 더 나아가 해리스와 클레볼드의 범행 동기에 대해 파악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프로그래머 제이슨 로러가 이메일을 통해 해당 게임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그 스크립트가 공개됩니다.
 

 

 

 

제이슨 로러 (이하 JR): 어떤 경유로 《콜럼바인 RPG!》를 만들게 되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나요?

대니 레돈 (이하 DL): RPG 만들기 2000을 발견하고 나서 이제 저도 비디오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한 달쯤 해보니 몇 달만 시간을 들이면 되겠다는 걸 알았고…그 시점에서 제게 물었습니다. “만약 비디오게임을 만든다면…어떤 걸 만들지?” 물론 콜럼바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콜로라도 주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제게 사건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은 점도 있죠. 그리고 한때 사건의 원인으로 비난 받았던 게임의 관습을 이용해 비평하는 게임을 만들 기회기 때문에, 완벽한 소재로 보였어요. 그래서 6개월간 제 컴퓨터 앞에서 무작정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는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펼쳐지는 상황대로입니다.

JR: 어디서 기본적인 구상이 나왔나요?

DL: 고등학교에 다녔을 때, 저는 언론에서 총격 사건의 원인을 아주 잘못 짚고 있다고 느꼈어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록 음악, 비디오게임)이 모두 공격받고 있었고 아무도 그걸 막지 못했습니다. 그건 마치 누가 가능한 잔혹하게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2과 《둠》(Doom)을 공격하는가를 경쟁하는 것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저와 친구들은 저녁 뉴스에서 말하는 진부한 의견에 대안을 이야기하곤 했죠. ‘콜럼바인!’ 뮤지컬, 콜럼바인 액션 피겨, 그리고, 예, 콜럼바인 비디오게임처럼요. 제 의견을 글로 표현하려고 학교에서 총격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 목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1학년 때는 글쓰기 과제에서 사건을 ‘콜럼바인 울타리 속 결판’이라고 칭했습니다. 채점자 중 두 명은 저를 낙제시켰지만, 세 번째 선생님은 두 선생님이 제 풍자를 잘못 이해했고 이 숙제는 확실히 모범이 된다고 지적해주셨죠…결국 만점을 받았습니다.)








사건을 음지로 밀어 넣고 악마화하는 것 대신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모호한 윤리성을 표현하는 열린 대화의 공간이 있었다면, 저는 이 게임을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키스 올버맨(Keith Olbermann)3이 최근 심야 쇼에서 제 마음을 울리는 말을 했어요.

“은폐하려고 하면 확인시켜줄 뿐입니다. 불법으로 만들면 호기심의 대상을 만듭니다. 말하지 말라고 하면 소리를 지릅니다.”

사건 7년 후인 2005년 4월 제가 인터넷으로 게임을 공개한 것은 ‘소리 지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목 끝에 느낌표를 붙였죠.


JR: 게임이 예술을 지향할 때, 우리는 어떻게 흥미로운 메커닉 같은 ‘게임플레이 요소’와 게임플레이가 아닌 콘텐츠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DL: 저는《콜럼바인 RPG!》가 게임의 기준에서 ‘좋은 게임’이 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제가 《퀘이크 4》(Quake 4)를 만들려고 했다면 비참하게 실패했을 테죠. 저는 《콜럼바인 RPG!》가 전통적인 게임 메커닉에 대비될 때 효과가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마릴린 맨슨 CD를 장착해서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마피아를 위한 또 한 번의 승리” 같은 우스운 메시지를 출력하고, 《사우스 파크》(South Park)4에 나오는 사탄과 싸우는 것들 말이죠.

《콜럼바인 RPG!》는 절대 돈을 주고 살 만한 게임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쓰레기고 몇 분을 내줄 가치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디오게이밍의 혁명입니다. 저는 키메라 같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콜럼바인 RPG!》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걸 가져갈 수 있습니다. 쓰레기든 보물이든 아니면 그 사이의 어떤 것이든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제가 한 것처럼 이런 일을 하느냐는 만드는 사람들에게 달렸습니다. 제가 걸은 길을 따라오지는 않길 바라요. 쉽지 않은 걸음이니까요. (저는 보통 사람이 평생 받게 될 증오를 담은 메일을 하루마다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에 대한 게임을 자유롭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당신은 내가 무슨 무슨 게임을 만들도록 영감을 주었다”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정말 멋진 일이죠. 제가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으로 이 게임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영화나 연극처럼 제게 긴장감을 주는 표현 수단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게임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기회로 보일 겁니다.

JR: 당신은 《콜럼바인 RPG!》를 개념 예술 작품이라고 설명했고, 흥미로운 게임플레이를 노리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게임에 대한 제 리뷰에서 저는 플레이하기 흥미로우면서 생각하기도 흥미로운 게임이 나오길 바랐습니다. 어떤 식으로 예술가의 메시지와 공명하는 메커닉을 상상해볼 수는 있는데요. 당신은 그런 게임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나요?

 

 

 

 



DL: 저는 《9월 12일》(September 12th)5과 《다르푸르가 죽어간다》(Darfur is Dying)6 같은 게임이 메커닉이 게임의 메시지를 특징짓는 좋은 예라고 생각해요. 이런 경향을 계속 추구할 수 있죠. 모든 슈퍼히어로가 놀라운 능력을 갖출 필요가 없듯, 모든 비디오게임 주인공이 전능한 능력을 갖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디스어펙티트》(Disaffected)7를 좋아합니다. 어릴 때는 패미컴의 젤다 게임 ROM을 해킹해서 이름을 ‘상인의 전설’이라고 바꾸고 싶었어요. 그냥 동굴에 앉아 가끔 찾아오는 후드를 쓴 엘프에게 아이템을 파는 거죠.

한계는 하늘 높이라고 생각해요. 비디오게임이 전통 때문에 스스로 만든 경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콜럼바인 RPG!》를 보고 “홀로코스트나 9/11에 대한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라고 해도 잘못 짚은 거구요. 비디오게임은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또 진부한 방법으로도 완전히 독창적일 수 있습니다. 《콜럼바인 RPG!》의 진짜 목적은, 비디오게임의 한계를 시험하고…솔직히 많은 사람이 알만한 언짢은 기분을 느끼게 하려는 거였습니다. 이 매체가 언제 그 선배들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나요?

JR: 저는 리뷰에서 《콜럼바인 RPG!》가 무료 다운로드인 것도 언급했습니다. 왜 당신의 게임에 돈을 받지 않기로 했나요? 그 소스 코드를 공개할 계획이 있나요?

DL: 이건 돈과 관련된 일이 절대 아니었고…솔직히 제가 이 게임으로 돈을 벌려고 했다면 소송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이 게임은 완전히 무료이고, 열린 콘텐츠입니다. 어떤 식이냐면, 웹에서 많은 것을 취하고 종합해서 다시 웹으로 되돌리는 겁니다. 저는 인터넷을 아주 낙관적으로 바라봅니다. 돈은 참된 예술적 표현을 좀먹고 부패시키기 때문에 가능한 무료여야 했습니다.

자, 모두 RPG 만들기 2000을 사용해서 《콜럼바인 RPG!》를 해킹하고 다시 만듭시다. 여기에 아이디어가 몇 가지 있습니다.

당신이 탈출하는 아이인 버전.
당신이 트렌치코트를 입은 아이들을 죽이려는 경찰인 버전.
당신이 《콜럼바인 RPG!》를 다운로드하려는 아이를 막는 엄마인 버전으로 말이죠.

JR: 어떤 평자들은 비디오게임의 예술로서의 절정을 아케이드 게임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라고 봅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외로운 제작자나 아주 작은 팀이 아주 독창적인 게임(도나 베일리의 《센티페데》[Centipede]나 이와타니 토오루의 《팩 맨》 같은)을 만들었죠. 당신은 오늘날 업계를 대표하는 거대한 개발팀이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들이 만들 수 있는 질 높은 콘텐츠가 어떻게든 이득이 될까요? 당신처럼 외로운 개발자들이 어떻게 예술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까요?









DL: 새해에 친구가 《메탈 기어 솔리드 3》(Metal Gear Solid 3)를 6시간에 걸쳐 플레이하는 걸 봤습니다. 그 게임에는 영화적인 초현실주의 수준의 장엄함이 담겨 있었죠. 말하자면, 독립 영화제작자인 저로서는, 영화에서의 제 기본 철학이 게임에도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가주의’ 게임 개발자들도 제한된 자원으로 업계를 도약시키고 경계를 넓힐 수 있는 잠재력이 많습니다. 독립적으로 게임을 만든다는 건 타협이 그만큼 더 적다는 뜻이죠. 《콜럼바인 RPG!》에서 제가 타협했다고 할 수 있는 건 제로에 가깝습니다. 저는 거의 그대로 제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업계의 전설 존 카맥(John Carmack)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보 시대에 경계라는 것은 없다. 장벽이란 스스로 부과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정말 새로운 것을 드러내 개발하고 싶다면, 백만 달러의 투자가 필요 없다. 냉장고에 쌓아둘 피자와 다이어트 콜라, 작업용의 저렴한 PC, 그리고 헌신만이 필요하다. 나는 바닥에서 잤다. 나는 걸어서 강을 건넜다."

카맥이 《둠》을 개발했을 때처럼 오늘날에도 이건 사실입니다. 메이저에서 발매되는 게임은 항상 PS3 같은 콘솔을 통해 걸러지지만, 인터넷은 저처럼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기 작업물을 배포할 수 있습니다. 제 게임은 이런 자유로움이 업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례로 비칠 수도 있을 테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게임이 다시 한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예산을 쓰는 게임들을 점점 더 많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맥도날드 비디오게임》(McDonald's Viedo Game)8처럼 메이저 개발자들이 만들 수 없는 위대하고 작은 펑크록 같은 비디오게임들도 볼 수 있죠.

JR: 예술에 대해 한 문장으로 정의하실 수 있나요? 그러니까, 당신은 어떻게 예술 작품과 엔터테인먼트 작품을 구분하나요?

DL: 아, 이런. 교양과목이 제 생각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먼저 확신에 찬 정의를 말해 드려야겠군요. 저는 ‘엔터테인먼트’가 예술의 하위범주라고 하겠습니다. 엘리트인 척하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는 《쥐라기 공원》이나 《콘 에어》도 ‘예술’로서의 최소한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모든 예술이, 그러니까 모든 비디오게임이 반드시 재미있고 즐거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예술은 우리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거나 죄책감이 들게 하거나, 완전히 낙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비디오게임 때문에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건 언제였나요? 왜죠?
그럼 여기에 정의가 있습니다. 예술은 청중과 나눌 수 있는 표현의 모든 형식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라고 하면 여기서 인터뷰를 끝내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기분이니까, 여기서 그만 해야겠네요.

JR: 어떤 전자 게임이 예술적 성취의 절정이라고 생각하나요?






DL: 제가 어릴 적에 가장 좋아한 게임은 록맨 시리즈(저와 비슷한 키의 영웅이 등장했으니까요)입니다. 지금이라면 《둠》과 《파이널 판타지 6》가 제가 했던 게임 중에 거의 최고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두 게임이 《콜럼바인 RPG!》에 큰 영향을 미쳤죠.) 그러고 보니 닌텐도 64 용 《골든아이 007》(GoldenEye 007)로 러시아인들을 죽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네요…흐음. 아직도 오락실을 찾아가 가끔 《스트리트 파이터 2》를 플레이하고…그리고 피자와 《스매시 브라더스 대난투》 만한 조합도 없지요.

제가 정말 특별하게 여겼던 두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46억 년 전 이야기》(EVO: Search for Eden)랑 《원더보이 인 몬스터월드》는 제가 자라면서 기막히게 좋아한 것들이고…《목장이야기》(Harvest Moon)에서도 뭔가 색다른 매력을 느꼈던 것 같고…그리고 아직도 매년 《X-Com》을 다시 플레이해요. 아, 그만 해야겠네요. 저는 정말 비디오게임을 사랑합니다.

JR: 그런 게임들이 왜 당신의 마음속에서 예술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DL: 어떤 비디오게임이 왜 제게 중요한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거의 그걸 즐겼던 때의 제 삶의 순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책 아니면 CD에서 자신이 정말로 빠졌던 것에 대해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테죠. 예를 들어, 《스트리트 파이터 2》는 처음으로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빠졌던 게임입니다. 아이들이 오락실에 줄 서서 제 앞에서 4달러 25센트씩 버리게 했죠. 그랬어요. 킥 볼 팀에 선발된 아이, 운동장에서 모두를 재미있게 만드는 아이, 4학년에서 가장 작은 아이까지요.

어떤 사람들은 비디오게임을 어린 시절을 고갈시키는 대단한 시간 낭비로 묘사하려고 하더군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했던 게임과 함께 게임을 했던 사람, 게임을 사려고 집안일을 했던 것과 관련해 좋은 기억이 많이 있습니다…비디오게임은 절대 저를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고 그걸 하느라 토요일 밤을 지새운 적도 없습니다. 소닉과 골든아이를 정말 잘할 수 있게 되면서 깨달았습니다. 뭐든 마음을 다해 시도하면 잘하게 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제 2007년 계획이 특기 하나 개발하는 겁니다. 무슨 특기로 할지 결정하는 데는 6개월 정도 걸리겠지만…

출처 : 디자인과 플레이 번역소
 

 

 

 

 

해리슨과 클레볼드가 즐겨 했던 게임 둠 시리즈의 최신작 <둠 이터널>의 모습.(2020)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도 폭력적인 중범죄의 동기가 폭력적인 미디어 컨텐츠라는 소위 " 기레기" 언론인들의 논리적 오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을 뿐더러,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리를 하는 게임이 플레이어를 요리사로 키워주는 것도, 낚시를 하는 게임이 플레이어를 어부로 키워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지만 이 거짓부렁이 뉴스들 탓에 많은 사람들이 그 뉴스에 영향을 받은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타파하려면 아마도 지금까지 이어져 온 미디어 컨텐츠의 역사만큼이나 긴 시간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장르와 수위가 어떻던 간에 모든 미디어 컨텐츠들이 모든 부정적인 행동의 동기로서 인식되거나 하는 일이 가능한 한 빨리 줄어들고, 끝내는 없어져서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을 날이 오기를 이 글을 통해 기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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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예 퀘스트 3030 - 인디게임 속에 이스터에그로 숨은 정체불명의 신흥종교가 꾸미는 음모

2020.02.26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13년 7월에 만들어진 인디게임 <카니예 퀘스트 3030> 되시겠습니다.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유명한 래퍼 "카니예 웨스트"를 소재로 한 게임이며, 정작 주인공으로 출연한 카니예 웨스트 본인에게는 딱히 허가를 받은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게임은 아닌 듯 싶으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쉽게 게임을 다운받아 접할 수 있습니다.

 

게임 자체의 내용은 상당히 평범한 팬메이드 게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카니예가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도중 쓰레기통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체불명의 포탈을 건드려 3030년으로 타임 슬립을 하게 되고,

 

 

3030년의 세계에 당도하게 됩니다.

 

3030년의 세계는 "BASEDGOD"라는 별명을 가진 래퍼 "Lil B"가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세계였고, 카니에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제이-지(Jay-Z), 에미넴, 스눕독, 투팍, 노토리어스 비아이쥐, 나스, 닥터 드레 등 명성이 높은 래퍼들의 클론을 동료로 맞아 팀을 꾸린 후 Lil B에게 맞서는 내용을 보여주죠

 

 

 

 

 

 

 

 

여기까지만 본다면 이 게임은 단순히 힙합을 사랑하는 팬들이 만들어낸 평범한 게임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게임 안에는 게임을 빙자한 정체불명의 음모가 숨어있었습니다.

바로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이스터에그였죠.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NPC에게 특정한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에 ASCEND(승천) 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갑자기 게임의 내용과 배경이 변하면서 정체불명의 문구가 출력됩니다.

당신(플레이어)를 속여서 미안하며, 사실 이 게임은 이 게임 안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당신은 모종의 암호를 풀어 나가면서 ASCENSION(승천) 이라는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한다.

라는 내용이었죠.

 

 

그렇게 이스터에그 속의 암호를 모두 푸는 데 성공하면, 플레이어는 축하 메시지와 함께 "당신은 승천했습니다." 라는 엔딩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의 승천을 원할 시 출력되는 약관에 동의하고, 동의할 시 나오는 웹사이트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기입하라는 문구가 뜨죠.

 

 

현재까지도 이 이스터에그의 정체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플레이어들의 추측을 통해 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가설은, 이 게임 속의 이스터에그가 바로 신흥 종교인 어센셔니즘(Ascensionism : 승천교/승천주의) 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센셔니즘은 2006년에 등장한 신흥 종교 중의 하나로, 인간의 유한한 육체로는 진리에 도달하는 것에 한계가 있으며, 수행을 통해 육신이라는 영혼의 감옥을 승천을 통해 벗어나 더 높은 단계의 존재가 되어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교리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선행과 악행을 포함한 모든 행동이 결국 영혼이 그것을 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감으로서 승천을 위한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이러한 정보와 플레이어들의 추측을 종합해 본다면, 이 게임은 유명한 래퍼들을 소재로 만든 팬메이드 게임의 탈을 쓰고 있는, 신흥종교 세력의 교리 설파와 구성원의 모집을 목적으로 한 홍보였다는 것이 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인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설령 이 가설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 정체불명의 사이비 종교 홍보에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후 본 게임은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게임 리스트에 추가되는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더불어, 그 와중에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종교 "신천지"를 생각해 본다면, 신흥종교에 대해서 좀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이런 미디어 컨텐츠 내에서도 그것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몸조리 잘 하시고, 알 수 없는 사이비 종교에 말려들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는 일상을 보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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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ecution - 게임 속에서의 무분별한 플레이어들의 행보에 대한 비판

2020.02.05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08년에 만들어진 네덜란드의 인디게임 제작자 제시 벤브룩스(Jesse Venbrux)의 게임 <Execution>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인디게임이란 표현이 무색하게 단순하고 짧은 구조의 게임방식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프로그램으로, 의외로 심오한 주제를 가진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을 미리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들의 행적이 게임 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짧은 내용과 문장 몇 개로 간략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이 묘미이죠.

거두절미하고 게임의 내용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경고문 비슷한 내용의 게임 안내가 스크린에 등장하게 됩니다.

"당신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릅니다."

"당신은 승리할 수도 있고,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옳은 선택을 하십시오."

 

설명이 끝나먼 마우스 커서는 타 FPS게임의 모습처럼 크로스헤어의 모습으로 변하고, 배경에서는 회전초가 굴러다니며, 사람 하나가 기둥에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마우스 클릭으로 사격이 가능해지지요.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게임이 저 기둥에 묶여 있는 사람을 쏘아 죽이는 내용의 게임인가 싶어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감행하게 되고, 물론 저 사람은 죽어버립니다.

 

그리고 뜨는 텍스트.

"당신은 패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게임이 다시 시작됩니다.

하지만 게임이 시작될 때의 텍스트의 내용은 변하죠.

"당신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릅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리고 기둥에 묶여있던 사람은 여전히 죽은 채로 등장하기 시작하며, 게임 내에서 무슨 수를 써도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게임을 다시 실행하거나 시스템을 재부팅해도 말이죠.

 

 

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바로

ESC를 눌러 게임을 종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축하합니다!"

"당신이 승리했습니다."

라는 내용의 텍스트가 뜨며 게임이 종료되죠.

 

 

물론 컴퓨터로 제작된 프로그램이니만큼 레지스트리 파일을 건드려 죽어버린 남자를 되살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해당 파일의 이름 역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We can rivive him with this registry, but in real world, bringing back is impossible."

"우리는 이 레지스트리로 그를 되살릴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지 - GTA시리즈의 제작자로 유명한 Rockstar Games 사의 작품 맨헌트(Manhunt) 시리즈.

현재까지도 출시되는 다양한 종류의 게임은 게임 속의 세게관에서 주인공이 되어, 자신에게 반하는 대상을 척결하고 강해지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본 작품은 이러한 게임들의 양상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과연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이 게임 속에서 하는 행동들이 과연 옳은 일일까? 라는 인상을 심어주죠.
 

위의 움짤로 볼 수 있는 게임 맨헌트 시리즈는 모종의 이유로 감옥에서 나온 중범죄자가 자신을 사면해 준 방송인이 제시한 스너프 필름(자살이나 살인, 강간 등의 가혹행위를 촬영한 비디오) 를 제작하라는 의뢰를 받아들여 주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척살하고 다니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성향의 게임은 소수겠지만 구태여 이런 하드코어한 컨텐츠가 아니라고 해도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보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캐릭터 뒤에 사람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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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TOUS - 배니싱 트윈 현상과 키메라 신드롬을 통해 보는 윤리적인 인간의 조건

2019.11.24

오늘 다룰 작품은 오스틴 브리드(Austin Breed)가 만든 플래시 게임 <COVETOUS>입니다.

제목인 Covetous는 "탐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8비트로 제작된 단순한 연출과 쉬운 게임방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내에서 충분히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기괴한 사운드의 조합으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게임들> 중의 하나로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키메라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게임이기도 하지요.

 

"배니싱 트윈" 현상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산모가 쌍둥이를 임신했으나, 두 태아 중 하나가 살아남을 가망이 없을 때, 약한 태아는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고, 모체나 다른 형제에게 흡수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키메라 증후군>은 이에서 파생되어, 죽은 형제를 흡수하여 자란 나머지 형제가 성장하여 이중인격이나 두 개의 유전자를 갖는 경우를 일컫습니다.

사실, 게임의 내용으로 보면 키메라 증후군보다는 배니싱 트윈 현상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국내에서 이런 이름으로 퍼졌으니 뭐 어쩌겠습니까..;;

그럼 게임의 내용을 차차 설명해 보도록 하죠.

 

죽은 후 형제의 몸으로 흡수된 주인공은 흰 점 모양의 세포로 시작하여 숙주의 몸 안을 조금씩 먹어치우기 시작합니다.

이는 녹색 오브젝트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은 점점 성장하며 더 많은 부분을 먹기 시작하죠.

 

그리고 어느새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다가...

 

충분히 성장하자 숙주의 몸을 찢고 나오려 하게 되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그 모습은 인간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게 만듭니다.

플레이어는 여기서 숙주를 죽이고 태어날지, 혹은 그러지 않고 다시 목숨을 끊어 형제의 몸 안으로 흡수될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또한,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독백이 짤막한 텍스트로 출력되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의미심장하죠.


 

어떤 기적으로 인해, 나는 또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었어.

 

나는 내 형제의 몸 속에 남아 있던 잊혀진 세포였다.

 

내가 점점 두꺼워지고 덩어리져 가는 것이 느껴져. 내가 잃어버렸던 그 모습 그대로.

 

너무 배고프다.

 

성장하기 위해서 먹는다. 나는 내 무신경한 혈육이자 숙주를 계속 잡아먹어야 해.

 

대체 어떤 신이 나를 신장과 지방 속에 묻힌 채 죽도록 내버려 두었던 걸까.

 

사랑한다, 나의 형제, 자비로운 나의 숙주여.

 

다 처먹어주마 개돼지년아.

 

나는 부와 명예를 바라지 않았어. 결국 존재하기만을 바랐을 뿐이야.

 

(엔딩1. 숙주를 죽인 후 빠져나오지 않고 다시 자신이 죽음을 택하여 형제에게 흡수될 경우)

결국, 나는 해내지 못했어. 다른 이에게서 내가 빼앗겼던 것을 도로 빼앗을 수는 없었어.

 

(엔딩2. 숙주의 몸을 찢고 빠져나와 새로이 태어났을 경우)

오, 태어났다.
내 존재가 알려지길.

 

<COVETOUS>였습니다.

결국 이 게임은, 주인공이 자신의 숙주이자 형제를 죽이고 인간인지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로 태어나는 이야기와, 형제의 것을 빼앗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야기로 나뉩니다.

그렇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윤리적인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는다. 라는 식으로 해석해 볼 여지도 충분히 있겠지요.

"인간이 가진 윤리나 인간성을 통해 윤리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목숨과 맞바꿀 만큼 소중한가?" 라는 메시지를 기괴한 8비트를 통해 브리드는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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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스크(TUSK) - 인간의 모습과 인간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

 

2019. 11. 16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2014년 개봉된 케빈 스미스 감독의 영화 <터스크>입니다.

인간 바다코끼리라는 소재를 다룬 저예산 영화로, 괴상망칙한 영화로는 그 악명 높은 <인간지네> 시리즈에 버금가는 수준을 자랑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리뷰에서는 혐오스럽고 잔인한 장면이 많이 보여질 예정이니, 글을 읽을 때 각별히 주의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세계의 핫한 동영상을 보고 그 주인공들을 취재하며 라디오로 전파하고 다니는 팟캐스터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왈라스(위)와 테디(아래)는 방송 도중 엽기적인 동영상을 발견합니다.


 

바로 칼부림을 하며 놀다 실수로 자신의 다리를 자른 남자를 보여주는 동영상이었죠. 그들은 이런 그를 방송으로 조롱했으며, 그 중에서도 왈라스는 그를 직접 취재해 보고 싶다며, 여자친구 알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로 떠납니다.

 

 

여자친구의 연락은 뒷전으로 미루고 취재를 위해 달려왔지만...

 

영샹의 주인공은 주위의 조롱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 후였죠.

 

 

끝내 아무런 특종도 건지지 못한 왈라스는 돌아가려 했지만, 우연히 들른 술집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도중 기이한 내용의 쪽지를 발견합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는 내용과 그 주인공이 사는 곳이었죠.
결국 왈라스는 그곳으로 곧바로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집

 

 

쪽지의 주인공은 하워드라는 이름의 노인이었습니다.

 

 

왈라스에게 차를 대접하며 하워드는 젊은 시절, 자신이 항해 중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으나, 어떤 바다코끼리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살아났으며 그 바다코끼리에게 "터스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사실에 놀란 왈라스는 이를 취재하려 했지만...

 

하워드가 미리 차에 타놓은 수면제로 인해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죠.


 

다음 날, 깨어난 왈라스는 자신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다리에 감각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워드는 갑자기 독거미가 나타나 왈라스의 발을 물었고, 그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고 설명해주는데, 바로 그것은...

 

다리 절단이었죠.

 

사실 거미가 나타난 것도 거짓말이었지만, 바다코끼리와의 드라마틱한 인연도 반은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워드는 그저 표류 도중 바다코끼리 터스크의 의해 구조되긴 했지만, 이후 살기 위해서 그 터스크를 잡아먹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그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살기 위해 터스크를 잡아먹은 것에 죄책감을 느꼈던 하워드는, 사람들을 납치하여 그들을 이용해 새로운 인간 바다코끼리 "터스크"를 만들어 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터스크에게 죽음을 맞기를 바라고 있었죠.

 

왈라스는 이에 기겁하여 동료 테디와 여자친구 알리에게 경찰에 신고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왈라스가 한 발 늦은 후였습니다.

하워드는 결국 왈라스를 기절시킨 후 그를 인간 바다코끼리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하워드의 집에는 잔잔한 바다 풍경이 연출되는 영상과 함께 괴상한 울부짖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터스크가 완성되었습니다.

 

하워드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 바다코끼리 왈라스, 아니 터스크와 함께 생활하고, 수영을 하며 놀고, 바다코끼리의 주식인 고등어까지 먹이로 주며 왈라스를 진짜 바다코끼리처럼 만들려 하기 시작합니다.


 

하워드가 던져준 고등어를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 터스크의 모습


 

마지막으로, 하워드는 새로이 탄생한 터스크의 생존 본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이전 희생양들의 거죽과 뼈로 만든 바다코끼리 옷을 뒤집어쓰고, 터스크와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계속 훈련을 받은 터스크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죠.


 

결국 하워드는 바다코끼리 옷을 찢고 나와 인간의 모습으로서 터스크를 죽이려 들었지만,

 

터스크는 바다코끼리의 엄니로 하워드를 난도질하여 스펀지처럼 만들어 죽여 버리는데 성공하죠.

 

그렇게 하워드는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피 맛을 본 터스크는 결국 왈라스였던 인간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잊은 채 이성을 잃어버리고, 진짜 바다코끼리 "터스크"로 각성해 버리고 맙니다.


 

 

뒤늦게 알리와 테디가 왈라스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은 후였죠.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났습니다.

터스크는 유기, 혹은 기부된 동물들로 이루어진 왜래의 동물농장에 맡겨져 살고 있었고, 알리와 테디는 터스크를 보기 의해 찾아옵니다.

 

터스크의 새 집

 

그를 보기 위해 알리가 고등어를 던져 줍니다.

 

 

이제 바다코끼리가 다 됐으니 능숙하게 맛있는 내장 부분부터 바로 먹어치우는 터스크의 모습.

 

 

알리는 변해버린 남자친구의 모습에 슬퍼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외치고, 이에 반응이라도 하듯 생각에 잠기는 터스크의 모습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화 <터스크> 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고찰해 보기에는 그 주제가 상당히 얕은 듯한 느낌이 적잖이 들었습니다만, 영화 자체의 요상한 내용이 리뷰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팟캐스터가 되어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웃며 살던 주인공 왈라스의 행적과, 하워드라는 미치광이에 의해 인간 바다코끼리가 되고 마는 끔찍한 말로가 비교되어 인간성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생각해 볼 건, 인간이 인간의 형상을 잃었을 때,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미약하게나마 영화에서 보여 주고 있지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라는 말은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성 사이의 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왈라스가 다리를 잃고 절망하고, 끝내 하워드에게 신체개조를 받으며, 결국 인간 바다코끼리가 되었을 때 그 정신이 망가지는 과정을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왈라스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이번 이야기를 마무리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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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라이스(Splice) - 새로이 창조된 인조 생명체의 아름다움과 그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댄 대가에 대한 고찰

 

2019.11.03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영화 <큐브>의 감독으로 유명한 빈센초 나탈리 감독의 SF 스릴러 영화 <스플라이스>입니다.

유전자 조작과 이를 통해 탄생한 새로운 인조 생명체를 소재로 다루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과 잔혹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SF 장르에서는 드문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단어 Splice는 밧줄이나 비디오 테이프의 필름 등을 이어 붙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 다종(多種)의 생명체가 가진 유전자를 모두 융합시킨 생명체가 탄생하는 이야기를 다룬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존하지 않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금단의 과학 기술과 이로 인한 참혹한 대가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포스터에서는 이를 "무섭도록 아름답다"는 표현과 함께 미화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표현이 사용됐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내용을 설명해 보도록 하죠.


 

영화는 수술복을 입은 사람들을 비추면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전도유망한 과학자 부부 클라이브(좌)와 엘사(우)로, 이들은 제약회사에 납품할 신약을 만늘어 내기 위해 조류, 양서류, 갑각류, 파충류 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의 유전자를 결합하여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구 끝에 이를 생산할 수 있는 정체불명의 인조 생명체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죠.

 

새로이 탄생한 인조 생명체의 모습

 

두 사람을 이렇게 태어난 두 생물을 프레드와 진저라 이름짓고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두 생물을 만들어낸 이유는 암수별로 다른 유전자 조합 때문이었겠지요.

 

 

그 과정에서 두 생물이 혓바닥(?)처럼 생긴 기관을 이용해 서로 교감하는 모습도 보여주죠.

 

그들의 연구는 성공리에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아직 난제가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새로이 만든 유전자를 인간의 유전자와 결합하는 것이었죠.

인간의 유전자는 타 동물들보다 훨씬 복잡한 유전자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부부는 이에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끝내 부부에게 금지된 호기심을 심어 주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죠.

 

부인 엘사는 제약회사들을 깜짝 놀래켜 주기 위해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에 인간의 유전자를 합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그나마 엘사보다는 조금 더 윤리적이었던 남편 클라이브는 이를 만류했지만,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엘사의 실험에 동참하게 되죠.

 

결국 전도유망한 과학자 부부 사이에서 금지된 실험이 시작되고,

 

 

인간도 동물도 아닌 무언가가 태어납니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정체불명의 생물

 

놀랐는지 실험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듭니다.

 

 

클라이브는 실험실을 밀폐시키고 가스를 틀어 생물을 죽이려 들었지만, 이를 좀더 연구해 보자는 엘사의 제안에 결국 마취 가스를 틀어 생물을 재운 후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다종(多種)의 유전자를 합쳐서 탄생한 그것은 보통 동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장 속도를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인간의 유전자가 합쳐진 만큼 어린아이 수준의 지성까지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엘사의 옷에 새겨진 단어 NERD까지 알파벳을 조합하여 따라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죠.


 

그리고 너드라는 단어를 거꾸로 보았을 때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엘사는, 그 생물에게 드렌(Dren)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러나 며칠 후 큰 사건이 일어나고 말죠.
실험실에서 같이 일하던 클라이브의 동생 개빈이 걸어잠근 실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고 싶어 실험실에 들어섭니다.

 

드렌의 꼬리가 보이고...

 

외부인이라 가차없이 공격당합니다.

 

다행히 부부의 저지로 개빈은 무사했죠.

하지만 이로 인래 드렌의 존재가 처음으로 외부에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형이나 형수보단 윤리의식이 강해 보이는군요.

 

드렌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빌까 두려웠던 클라이브는 드렌을 물에 넣어 익사시키려 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드렌을 만들 때 양서류의 유전자가 사용된 탓에, 양서류의 폐가 각성하여 드렌이 수중 호흡까지 해낸 탓이었죠.

결국 부부는 자신들의 본 연구를 계속하면서 비밀리에 드렌을 계속 키우기로 합니다.

 

어느덧 시간은 계속 흘러 부부는 그들의 연구 성과를 발표합니다

 

 

 

 

 

 

다시 한 번 교감을 시도하려는 프레드와 진저

 

그러나 그것은 교감이 아니었습니다.

 

둘은 서로 피 튀기는 싸움을 시작하죠

 

피가 튀고

 

연구실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싸움의 원인은 그들이 창조해낸 인조 생명체들이 주기적으로 성별을 바꾸게 되는 특징이 있다는 점 때문이었고, 동성이 된 프레드와 진저는 생식 본능에 이끌려 동성인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웠던 것입니다.

 

 

이를 캐치하지 못한 탓에 그들은 제약회사의 갈굼을 피하지 못하게 되고, 그들의 실험은 원점으로 돌아가죠.


 

 

 

결국 이들에게 남은 희망은 드렌뿐이었고, 드렌은 외부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금지된 실험체였던 탓에 부부는 드렌을 키울 수 있는 장소로 연구 거처를 옮깁니다.

 

 

새로운 연구 거처는 엘사의 부모님들이 살던 농가.


 

 

드렌도 많이 컸습니다.

 

 

 

알파벳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드렌.
외부에 노출이 되면 안 되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겠죠. 분명 나가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안 되죠.
결국 드렌이 난동을 피우기 시작하고 엘사와 드렌의 관계도 점점 틀어집니다.

 

결국 화가 난 드렌은 지붕을 통해 나가 버리죠.

 

그 찰나 발을 헛디딘 드렌이 지붕에서 떨어지나 싶더니

 

내제되어 있던 조류의 유전자를 이용해 날개를 만들어 떨어지지 않고 날아오릅니다.

 

 

결국 클라이브가 드렌을 설득하고

 

 

드렌은 다시 고분고분해집니다.
왜 클라이브의 말은 듣고 엘사의 말은 안 듣는 걸까요..?

 

 

결국 드렌은 나가고 싶은 욕구를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대신하게 됩니다.
하지만 드렌이 그린 그림에는 클라이브 뿐이었죠.

 

 

자기 그림은 없냐는 엘사의 물음에 드렌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드렌에게 춤을 가르치는 클라이브

 

즐거워하는 드렌의 모습

 

거기서 클라이브는 드렌에게서 익숙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엘사가 드렌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난자를 썼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엘사는 자신의 유전자로 만든 드렌과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고양이를 기르라고 선물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만, 드렌은 그 고양이마저 꼬리로 찔러 죽여버리곤, 엘사를 위협합니다.

바로 드렌이 "암컷"이었으며, 생식 본능에 이끌려 여자인 엘사를 경쟁 상대로 보았기 때문이었지요.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엘사는 드렌을 묶어 놓고 꼬리를 잘라 연구 성과로 제출합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클라이브는 드렌을 보러 왔고 둘은 묘한 분위기에 이끌려 성관계까지 하고 말죠.

엘사는 이를 목격하게 되고 부부싸움을 하게 되지만, 연구 성과로 재츌한 드렌의 꼬리가 프레드와 진저보다 훨씬 안정적인 샘플임을 알게 되자 결국 필요한 것은 얻었으니, 드렌을 죽이자는 것에 암묵적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성장속도가 너무 빨랐던 드렌은 결국 예상보다 일찍 죽음을 맞았고, 부부는 드렌의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드렌의 유품 중에서 그림이 발견되는데, 클라이브의 그림은 온데간데없고 엘사의 그림만이 가득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제약회사에 제출된 연구 성과의 샘플(드렌의 꼬리)에서 인간의 유전자가 검출되었다는 것을 눈치챈 연구소장은 드렌의 존재를 눈치챘고,
결국 그는 개빈과 함께 부부를 찾아와 드렌의 행방을 부부에게 묻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드렌은 이미 죽은 후였죠.

 

그러나 드렌이 묻힌 자리에 시체는 온데간데없었고 드렌은 다시 살아나 있었습니다.

 

성별을 주기적으로 바꾸는 프레드와 진저처럼, 이번엔 수컷이 된 채로요.

수컷으로 부활한 드렌은 다시 그 본능에 이끌려, 이번엔 수컷들을 경쟁 상대로 보고 죽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개빈과 제약회사의 연구소장이 드렌에게 끔찍한 죽음을 맞죠.

 

 

드렌은 클라이브마저 반죽음상태로 만든 후 엘사를 잡아 옷을 찢고 강간합니다.

오직 본능에 따라서 말이죠.

 

하지만 클라이브가 마지막 힘을 짜내 드렌과 동귀어진하고, 결국 이 참극에서 살아남은 건 엘사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조 생명체 사건은 종결되나 싶었지만, 제약회사에서 엘사에게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드렌에게 강간당한 엘사가, 드렌의 아이를 임신하고 만 것이었죠.

제약회사는 엘사가 잉태한 생명체를 연구하기 위해 그 생물을 거액의 돈을 주며 사들이겠다는 제안을 하게 되죠.

그렇게 인조 생명체로 시작된 비극이 비로소 진정한 막을 내립니다.

 

<스플라이스>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인조 생명체라는 금단의 소재를 현실의 요소와 잘 버무려냈지만, 그것이 너무 적나라한 탓에 신기하면서도 불쾌한 감정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금기라는 건 인간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금기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드렌 역의 배우 델핀 샤네끄

여담으로 드렌의 모습을 연출할 때에는 배우의 연기에 CG를 입혔다고 합니다. 인간과는 달리 과하게 넓어진 미간이 바로 그 증거이죠.
또한 그것으로 신비감과 혐오감이 동시에 연출되는 것을 노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로봇공학이나 3d 영상미디어 제작 등에서 등장하는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연상시키더군요.

로봇이나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어설프게 인간을 닮은 것을 사람들은 비인간형 로봇보다 더욱 혐오한다는 연구 결과에서 유래한 명칭인데, 사실 구태여 미간이 아니더라도 이련 요소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유독 사람의 얼굴 비례, 특히 눈과 미간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스플라이스>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무서운 아름다움"이란 건, 어떻게 보면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 그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 않은 느낌과 신비함, 그리고 이와 공존하는 혐오감이나 불쾌감 등을 말이죠.

과학 영역 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된 인간의 심리 등 여러 모로 생각해 볼 게 많은 복잡한 소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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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Le Ballad De Narayama) -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사회 사이에서 보는 도가 사상에 대한 고찰

 

2019.09.01
오늘 소개할 작품은 1983년 야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감독하여 개봉한 일본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 되시겠습니다.


일본어 제목을 해석한다면 <나라 산의 노래> 정도가 되겠군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현재 영화사와 동양 철학에 대한 연구 자료로 자주 거론되는 영화로 유명합니다.


필터링 없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혐오감과 선정성, 그리고 일본에서의 고려장이라는 타이틀로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를 충격에 빠뜨린 작품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죠.
작성자는 영화사에 대해서는 그리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나, 본 영화는 동양 철학 중에서도 노자의 도가 사상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저 역시 철학 전공자로서 처음 도가 사상에 입문했을 때, 본 영화에 관한 과제물을 처음으로 받아 작성했던 적도 있습니다.
도가 사상이라는 것 자체가 노자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무위자연을 주장한다는 특징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당장 노자라는 인물이 실존하는지의 여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문헌과 정보에 따르면, 도는 성질이나 모양을 가지지 않으며,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항상 어디에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우주 만물은 다만 도가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우주 만물의 형태는 그 근본을 따지면 결국은 17가지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사상입니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저서 <노자 도덕경> 속에 있는 '무위 자연'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우주의 근본이며, 진리인 도의 길에 도달하려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무위 자연' 사상입니다. 즉, 법률·도덕·풍속·문화 등 인위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사람의 가장 순수한 양심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도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죠.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숲 속 같은 '자연' 속에 들어가 살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인 그 도(道)를 파악하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는 것이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상이 대체 이 영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독자 여러분들은 슬슬 궁금해지겠지요.

영화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하나하나 짚어나가 보도록 합시다.





 



영화는 19세기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척박한 환경을 가진 오지의 작은 마을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서 나는 한정된 식량으로 인해, 이 마을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가혹한 관습을 그대로 따르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습 세 가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1. 결혼하여 자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장남에 한한다.

2. 식량을 훔치는 것은 중죄이다.

3. 나이 70을 넘긴 노인은 집을 떠나 나라야마에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입 하나를 줄이기 위해 부모를 버리거나, 자식을 버려야 하는 잔인한 선택의 기로를 부여하는 혹독한 관습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오직 장남뿐이기에, 장남 이외의 아들들은 노동력으로 전락하거나, 그럴 여유도 없을 경우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는 일은 예삿일이었죠. 거기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들은 거름으로 쓰기 위해 아무런 장례도 없이 논에 그대로 버려지는 일도 잦았습니다.


여아가 태어나면 화폐나 소금 등으로 팔아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있는 여아가 태어나는 것을 더 선호하기도 했죠.


그렇듯, 각 가정에서 장남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며, 장남 이외의 아들들은 장남에게 거스를 수 없을 뿐더러, 배우자도 맞을 수 없었기 때문에, 주체할 수 없는 욕구를 개들을 수간하며 풀기도 합니다.



 


<나라야마 부시코>의 주인공 타츠헤이(아들)과 오린(어머니)

영화의 큰 줄거리 틀은, 주인공인 타츠헤이와 그의 어머니 오린,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중점으로 서술됩니다.

69살이 되어 나라야마에 갈 준비를 해야 하는 어머니 오린, 희귀한 피부병에 걸려 악취로 고생하고 있는 동생 리스케,

곧 결혼을 하는 타츠헤이의 장남 케사키치, 그리고 케사키치의 아내가 될 무능한 며느리인 마츠야 등 여러 복잡한 이야기가 겹쳐지며 진행됩니다.


 

 




곧 나라야마에 가야 함을 깨달은 오린은 자신이 아직 정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너무 늙어서 집을 떠나야 함을 어필하기 위해, 스스로 자기 이빨을 돌절구에 부딪쳐 깨뜨려 버립니다.


 




그 와중에 마츠야네 집안은 늘어나는 가족 구성원 때문에 식량을 훔치다 발각되었고, 사위인 케사키치마저 범인인 장인의 따귀를 때리며 잘못을 추궁합니다.

그만큼 먹을 것을 훔치는 게 얼마나 큰 죄인지를 보여주죠.


 




중죄의 대가는 생매장. 일가족 전부가 생매장을 당합니다.

심지어 케사키치의 아이를 임신한 마츠야마저.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오린이 나라야마로 갈 때가 되자 동네 어른들이 모여 젊은이들에게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알려주기 시작합니다.

-산에 버려지는 노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아무도 모르게 나가야 하며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된다.

-노인을 지고 나간 자는 산에서 내려올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그 규율을 기억한 채 주인공 타츠헤이는 어머니 오린을 지게에 지고 길을 떠납니다.


 



나라야마에 도착하자 그들을 반기는 것은 혹한의 시작을 알리는 폭설이었습니다.



 


타츠헤이 : 어머니, 눈이 오는군요.

오린 : 그래, 내가 운이 좋아서 눈이 오는 거란다.


그 눈이 버려진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 세대를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혹독한 선택.

지금까지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던 타츠헤이였기 때문에, 그 선택이 쉽지 않았음이 드러납니다.


 


어머니를 버려둔 채 집에 돌아온 타츠헤이는 의연하게 생활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린이 남겨 둔 옷을 나누어 입는 가족들, 아내를 잃고 새 배우자를 찾은 케사키치 등....


산 사람은 살아가고, 죽은 사람은 흔적없이 사라지는 덧없는 마을과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는 어찌 보면 잔인하면서도 다른 문화권에 내어놓기에는 어려운 요소들을 아주 적나라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이슈가 된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나라야마라는 산 속에 고립되어 살아가고 거기에서 형성된 사회관과 그곳의 도덕, 그리고 우리의 현재 사회관을 관객으로 하여금 병치시켜 볼 수 있게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관습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끔 하는 영화, 그 안에서 우리의 가치판단의 기준이 올바른 것인지 되묻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과연 우리를 얽매고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나라야마 부시코'의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그 이야기를 나와 가족을 통해, 그리고 나아가 가족과 집단을 통해, 그리고 인간과 동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순환되는 고리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



뱀은 쥐를 잡아먹고 동면에 채 못 들어가 죽은 뱀을 쥐가 다시 먹고 죽을 때가 된 할머니는 며느리의 뱃속의 아이가 왠지 자신 같다고 이야기하고, 이처럼 인생사가 자연과 마찬가지로 순환되며 순간의 집착이 부질없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마을은 마치 `원시 공동체' 사회를 보는 듯 합니다. `생계 유지'는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간과 동물의 성관계장면(獸姦) - 강간처럼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것이며, 이 본능을 바탕으로 그것은 마을을 유지하는 `관습' 그리고 `법'으로 적용됩니다.



생존 앞에서 생명은 먹을 입 하나가 더 늘어난 성가신 일이요, 탄생의 신비나 경이로움 같은 우리가 흔히 접하던 생명의 개념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죽음이 도리어 대수롭지 않고 익숙한 것으로 전락하죠.

마치 마츠야를 잃고 오열하던 케사키치가 금세 새 아내를 맞은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과 그 기준이 대체 무엇이며, 그것이 과연 이상적인 것인지 거듭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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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드(Braid) - 조작된 시간 속에서 보는 목표 의식에 대한 경고

 

2008년 8월 6일 출시된, 조나단 블로우가 만든 인디게임인 브레이드(Braid) 입니다.

2008년 최고의 인디게임으로 선정되었으며, 타임지에서 선정한 50가지의 게임 중 하나로도 꼽혔습니다.

 

Braid라는 단어는 꼬여 있다는 뜻과 동시에 땋은 머리를 의미합니다.

몬스터를 점프밟기로 처리하며 주인공 팀이 공주를 구하러 간다는 내용에서, 슈퍼마리오와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을 보이고 있지만, 슈퍼마리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스토리라인과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부분들 때문에, 아직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많은 해석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작품이죠.

또한 여기서는 <시간 조작>이라는 요소를 아주 훌륭하게 활용하여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로 만든 것이 포인트인데, 플레이어의 실수로 게임에서 죽는 위기에 놓이더라도 시간조작을 하여 다시 죽기 직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가이드를 해 주기 때문에 게임 오버가 없는 것 또한 큰 특장입니다.

 

애초에 트레일러 자체에서도 시간을 되돌린다면 무엇을 하겠냐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는 개발자가 공식적으로 제작한 콘셉트임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트레일러와 함께 그 줄거리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도록 하죠.

 
 
 


만약 당신이 실수에서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 결과도 되돌릴 수 있다면?
죽음을 거스를 수 있다면?
다양한 현실을 볼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을 왜곡할 수 있다면?
만약에...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트레일러
 
게임의 주 스토리는 주인공인 팀(Tim)이 떠나간 공주를 되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겉보기에는 말이죠.
 
플레이어는 월드 2부터 시작하는 스테이지에서 퍼즐을 모아 맞추면서, 마지막 월드로 통하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왜 월드 2부터 시작하는지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차차 알려드리죠.
 

-팀(Tim)
 
브레이드의 주인공, 플레이어.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 팀(Tim)이란 이름이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 Time 에서 e만 제거한 이름이기 때문에 이 또한 제작자가 의도한 작명이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주인공이 어째서, 흔히 공주를 구하기 위해 등장하는 용사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는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이 또한 플레이어들에게 깊은 의구심을 심어주죠.
 
 

-공주와 기사 

주인공 팀은 장애물들을 헤쳐 나가고, 시간을 조작하며, 기사로부터 공주를 구출해야 합니다. 

 






스테이지들은 전체적으로 슈퍼마리오의 아류 게임같지만 어려운 컨트롤을 요구하는 퍼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 조작 능력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식은 죽 먹기가 되어버리는데요, 이는 브레이드가 여타 아케이드 게임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되죠.

 

 









 

 
게임은 상당히 몽환적인 음악과 배경을 보여줍니다. 초반에는 배경과 음악에서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게 해 주지만, 스테이지를 거듭할 수록 이러한 배경들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와 계속되는 시간의 조작 속에서 음악과 배경은 오히려 공포감을 조성합니다.

 

점점 게임의 분위기는 기괴하게 변해가죠.









 

각 스테이지의 출구에 도달할 때마다, 이렇게 봉제인형처럼 생긴 공룡이 등장하며, 

"안타깝지만 공주는 다른 성에 있어요." 라는 말을 시작으로, 계속 팀과 플레이어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왜 공주를 구해야하죠?

공주에 집착하는것은 아닐까요?

공주는 정말로 당신에게 구원되기를 원하나요?

어떤 공주인가요? 

공주는 존재하나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 플레이어는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회의감에 빠지며 목표는 점점 흐릿해지면서, 모든 것이 꼬여 있다는 것(Braid)을 깨닫게 됩니다.

 



 

 

각 월드에서 모은 퍼즐을 완성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하나씩 생기게 됩니다. 모든 퍼즐을 완성하면 맨 위의 방을 통해 월드 1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월드 1에서는 팀을 제외한 모든 것과 시간이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포에서 발사되어 움직이다 가시에 떨어져 죽은 후 화면 밖으로 사라지던 몬스터들은,화면 밖에서부터 다시 가시에 닿고 살아나며, 연기와 함께 대포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죠. 

 

심지어 배경도 거꾸로 움직이고 있고, 배경음악도 역재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테이지도 1-4부터 시작하여 1-3, 1-2, 1-1 순으로 진행되죠. 

 

그렇게 월드 1을 클리어하다 보면 플레이어들은 팀의 여정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되고, 이것이 노말 엔딩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공주가 기사로부터 도망치고 팀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쫓아다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월드 1-1의 마지막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그 진실을 알 수 있는데, 공주가 팀이 따라 올 수 있게 앞의 장애물을 치우고 공주의 집으로 도망치는 것은 사실 공주가 팀으로부터 도망치며 장애물로 팀을 가로막으려 하고, 결국에는 기사에 의해 구조되는 것이라는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월드 1은 팀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거꾸로 간다는 것에서 예상할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죠.

 

그리고 에필로그.

 



 

에필로그 스테이지에는 적이 따로 등장하지 않으며, 언제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설명하는 녹색의 책들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노멀 엔딩을 본 이후 에필로그 스테이지에 들어서면,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붉은색 책이 등장합니다.

 

이제까지와의 스토리를 설명하는 초록색 책과 달리 붉은색 책을 읽으면 숨겨진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시간 조작을 이용해 빨간 책을 펴둔 상태에서 팀이 탑에 몸을 숨기면 여성의 노곡조와 함께 숨겨진 내용이 드러나죠.
 

그곳엔 각각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녹색 글씨는 녹색 책의 내용, 붉은색 글씨는 붉은색 책의 내용)

 

소년은 소녀에게 따라오라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그녀를 보호할 것이고, 그들은 거짓과 의혹에 맞서며 이 답답한 성을 탈출해 자유로운 삶을 얻을 것입니다.
소년은 소녀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고 그에게 기댈 수 있도록 그녀의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맨해튼의 무심한 군중 속을 함께 걸어갔습니다. 수많은 행인으로 혼잡한 길을 따라 그들은 카날 거리의 지하철 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녀의 어깨에 걸친 그의 팔은 무거웠고 그녀의 목을 옥죄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 터무니없는 욕망 때문에 날 힘들게 하고 있어요." 어쩌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길도 틀렸는데 왜 나까지 데려가려는 거지요?" 다른 시간, 다른 장소였다면 그녀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만 잡아끌어요! 아프잖아요!"

그는 자와 컴퍼스를 가지고 작업했습니다. 그는 추측하고 추론하며 떨어지는 사과와 실에 매달린 쇠구슬의 뒤틀림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그는 공주를 찾고 있었습니다. 갈망에 사로잡힌 그는 그녀를 찾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생쥐를 토막 내어 뇌를 연구했고, 탈수 상태가 된 원숭이의 두개골에 텅스텐 막대를 심었습니다.


그녀는 유령 같은 형체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난 여기 있어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난 여기 있다고요. 당신을 만지고 싶어요. 날 바라봐 줘요!" 그녀는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사물의 겉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떨어지는 사과와 실에 매달린 쇠구슬의 뒤틀림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단서를 바탕으로 공주를 찾아내고 그녀를 만나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연구할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유난히도 치열했던 작업을 마친 그는 사막의 벙커에 앉아 보호경을 눈에 대고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이 고요하던 그 순간, 시간이 멈추고 전 우주가 한 점으로 수축하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땅이 열리고,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광경이었습니다. 마치 우주의 탄생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곁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해냈어." 곁에 있던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우린 이제 모두 개새끼들이야."


그녀는 높고 웅장하게 치솟으며, 분노를 뿜어내었습니다. 마치 "누가 감히 나의 잠을 깨우느냐!"라고 외치는 듯한 강렬한 분노를 쏟아낸 후, 이내 아래로 가라앉으며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마치 한숨과도 같은 부드러운 입김을 내쉬자 잿더미는 바람을 타고 펴졌습니다.
그녀는 그가 대체 왜 이 세상의 멸망과 그렇게 가까워지려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탕 가게였습니다. 그가 바라던 모든 것이 유리창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가게는 밝은 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그곳에서 풍기는 향기는 그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장 문으로 달려들고, 아니, 유리창 가까이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강한 힘으로 그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왜 그를 잡아두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거친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도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그가 내지르는 고함과 비명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녀를 멈추게 하려고 그녀의 땋은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해시키기에 그는 아직 어렸습니다.
그녀는 그를 안아 올렸습니다. "안 돼, 아가야."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따라 유리창 너머에 놓인 물건을 바라보았습니다. 초콜릿 막대와 자기 단극, 존재의 기원과 윤리 수학,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아가야, 네가 나중에 더 크면 가자." 그녀는 그렇게 속삭이며 그를 내려놓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나중에 네가 더 크면 말이야."
그날 이후로도 그녀는 그전과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길을 갈 때는 그 사탕 가게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만큼 혼란스러웠을 때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그는 모든 일을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많은 순간들이 마치 돌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바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바위를 쓰다듬습니다. 그의 손에 매끄러운, 그리고 약간 차가운 감촉이 전해집니다.
그는 돌의 무게를 가늠해 보고 이 돌과 다른 돌을 들어올릴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이 바위들로 기반을 만들고 축대를 쌓아 성을 지을 수 있습니다.
적절한 크기의 성을 지으려면 엄청나게 많은 바위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엔딩에서 내포된 의미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과학자인 팀은 오랜 세월동안 밝혀지지 않은 강한 힘(공주)을 쫓아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발견들을 하지만, 확실한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포기하려 하지 않았죠. 그는 자기사고 실험과 연구를 밀어 붙이고, 마침내 맨해튼 계획에서 그 끔찍한 결과-공주를 깨운 결과-를 보고야 맙니다("그녀는 높고 웅장하게 치솟으며, 분노를 뿜어내었습니다"). 실망하고 절망했지만, 이를 통해 성장한 팀은 공주를 잊고 자기의 지나간 경험을 벽돌삼아 그가 찾아온 공주의 성이 아닌, 자신만의 성을 쌓기로 결심합니다.

 

개발자 조나단 블로우는 일부러 이야기를 모호하게 만들었으며 게임을 만든 자신조차도 한 가지 이야기로 정해서 명확히 게임을 해석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플레이한 사람에 따라 시점을 바꾸면 진실이 드러난다는 단순한 해석에서부터 비디오 게임의 본질과 플레이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 등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이에 대한 표면적인 해석 역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를 넓게 해석해 달라는 제작자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표면적으로 '핵 기술 개발에 대한 은유'로 해석하는데, 다음과 같은 세부적인 연출들 때문이었죠.

 

브레이드의 발매일은 8월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8월 6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이기 때문이죠.

 



 

팀의 오른쪽에 있는 양철 우체통에는 698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는데, 이 6980이 뜻하는 것은 국제표준화규격 중 하나인 ISO6980 입니다.

 

이 국제표준은 방사능과 관련이 있는 표준어입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책을 읽다보면 중간에 인용된 문구 하나가 있습니다. '우린 이제 모두 개새끼들이야. (원문 : 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라는 부분인데, 이는 핵 개발 프로젝트로도 유명한 맨해튼 계획의 참가자 중 하나였던, 케네스 베인브리지가 원자폭탄 실험 직후 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볼 수 있는 불에 타는 듯 노랗고 붉은 야경은 폭탄이 터진 후의 모습으로 추측할 수 있겠죠.
 

 

또한 게임상의 스테이지 중에는 8개의 숨겨진 별이 존재합니다. 그 입수법은 사실상 자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며, 공략법을 봐도 획득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난이도를 보여주죠. 

심지어 어떤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2시간을 기다려야 획득할 수 있으며, 어떤 별은 얻기 위해서는 게임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획득한 별은 메인 메뉴의 배경에 하나씩 나타나게 됩니다.

여덟 개의 별 중에서 일곱 개를 모으는 데 성공하면, 월드 1의 일부가 약간 변경되어 또 다른 엔딩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일곱 개의 별을 모은 후 월드 1로 진입하면, 장애물의 패턴이 바뀌고 공주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접근하는 데 성공하게 되면 공주의 위치가 이리저리 번쩍이며 바뀌기 시작하더니, 점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배경음악이 사라지며 팀 홀로 남게 되면, 공주의 침대가 있던 곳에서 여덟번째 별을 획득하게 되고, 월드 1에서 나와 처음 게임을 시작하던 위치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여덟 개의 별이 모여있는 별자리는 사슬에 묶인 공주의 모습으로 변하죠.

마지막으로 플레이어가 더 이상 시간 조작을 할수 없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모호하게 끝납니다.

사실 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을 의미하는 것은 단지 이 게임의 극히 표면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개발자였던 블로우는 이 게임의 스토리와 의미 해석을 굉장히 모호하게 만들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현재까지도 각국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며 여러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표면적인 해석을 정리해 보자면,

 

팀이라는 과학자가 있었으며, 이 사람은 맨허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물리학을 공부하며 지식을 쌓았고, 명성을 쌓아 나갔습니다. 그는 진리를 탐구해 나갔으며,

하나씩 세상의 진리, 비밀들(공주)을 파헤쳐 나갔습니다.

 

그러다 핵분열에 대한 발상을 하게 되었고, 몇몇 과학자들이 모여 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들은 성공하여 공주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공주는 지극히 위험하고 치명적인 것이었죠.

 

결국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지게 되고, 팀은 충격에 빠집니다.

노말 엔딩에서 팀이 공주를 쫓으나 공주는 팀으로부터 도망치고 결국 기사에게 구조된다는 점과, 게임을 시작했을 때 볼 수 있는 불바다가 된 배경으로 미루어 보아, 기사가 원자폭탄을 투하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진 엔딩에서 팀이 공주와 접촉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폭발해 버린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팀이 원자폭탄을 터트린거나 마찬가지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의 중요 컨텐츠인 시간 조작은 팀이 그 죄책감에 사로잡힌 채 괴로워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이외에도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 이 브레이드라는 게임이 표면적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블로우의 말을 생각해 보면 이는 굉장히 추상적인 삼라만상에 대한 고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철학적이면서도 난해하기 때문에, 여러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뚜렷한 의미를 표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물론 이것은 철학도로서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표면적인 것에만 의존하다보면 이 난해한 작품 속에 내포된 여러 가지 의미를 넓게 해석할 수 없으리라 저는 감히 당부합니.

 

 

 

플레이어들은 진실을 찾고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로지 숨겨진 진실, 진리를. 즉, 공주를 찾기 위해서요.

<브레이드>라는 게임의 결말을 짓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한 진실을 비유적으로 알려주며 플레이어들에게도 반전을 선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은 끊임없이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게임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아직도 계속되는 논쟁이 바로 그 증거이죠.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따르더라도, 우리가 사는 동안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손에 한 개의 돌멩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돌멩이를 무엇에 쓸 수 있을까요?

이 돌멩이로 우리는 누군가의 두개골을 내리쳐 죽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걸로 곡식을 갈거나, 데워서 요리의 도구로 쓸 수도 있겠죠. 그게 아니라면 돌멩이에 화려한 물감을 칠하거나 조각을 하여 화려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것을 시멘트와 모래, 물과 섞어 훌륭한 건물 하나를 만들어 도시의 일부분으로 만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떻게 사용한 돌멩이라 해도, 결국 세월이 지나면 풍화되며 먼지가 될 것입니다.
결국 모든 건 먼지가 되어 버리죠. 자연도, 인간도, 다른 모든 것도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렇게 먼지가 되기 전의 우리는 바로 살아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어떤 결과가 따르더라도 진리를 탐구하려는 인간의 모습과 상상 이상으로 참혹한 결과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모습의 투영체가 바로 <브레이드>의 주인공 <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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